정부, ICO 행위는 막아도 투자는 막지 않았다…IEO 등 투자자 보호 위한 대안도 출현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신일그룹이 보물선 ‘돈스코이 호’를 대상으로 벌인 ICO(Initial Coin Offering‧암호화폐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가 2600여명을 속인 투자 사기로 잠정 결론 나면서 관련 정책 부재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ICO 금지국’에서 90억원대 ICO 사기가 발생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한 탓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말그대로 ICO 금지국이다. 지난해 9월 정부는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했다. 해당 방침을 입법화하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에서 ICO를 진행하는 기업은 없다.

그런데 정부는 기업의 ICO 행위만 금지했을 뿐, ICO 투자 행위를 금지하지는 않았다. 신일그룹은 싱가포르에 법인을 두었다는데, 이 기업에 당한 투자자들 대부분이 한국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ICO 자체가 기업공개(IPO)처럼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드시 공시해야 하는 요건도 없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ICO 프로젝트 팀이 스스로 공개하는 백서(White Paper)만 보고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투자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이는 한계가 있다. 자금을 모집하는 자와 투자자 사이에 정보비대칭성이 존재하는 탓이다. 이 때문에 신일그룹도 애초에 인양 계획조차 없던 돈스코이호 인양을 대규모 프로젝트인 것처럼 홍보할 수 있었다. 투자자들은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 안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보물선을 인양하는 것이라 굳게 믿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하루 빨리 ICO 관련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보물선 ICO 같은 투자 사기가 발생한 이유는 우리나라가 말 그대로 ‘규제 프리’ 상태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처럼 확실한 ICO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있어야 건전한 스타트업들이 ICO를 진행하고, ICO를 빙자한 투자 사기도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성격조차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ICO를 건드리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있다. 때문에 법적인 공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기존 법적 규제를 준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30일 기자들을 만나 “암호화폐에 대한 감독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투자자 손실은 물론 보물선 ICO 같은 사기 거래도 횡행하게 됐다”며 “규제 공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기존 법규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꼽히는 것이 암호화폐 기능에 따라 현 자본시장법을 부분적용하는 안이다. 권오훈 블록체인센터장은 지난 29일 ‘ICO 금지로 인한 국부유출 현실과 대안’ 토론회에서 “암호화폐를 지불형, 유틸리티형, 증권형 등으로 분류해 각 형태에 알맞은 법률을 적용하는 방안이 있다. 증권형 암호화폐 ICO에 대해선 기존 자본시장법을 적용하고, 그 외 암호화폐에는 자본시장법 부분 적용, 자율 규제 등의 방안을 도입하는 것”이라며 현 상황에서 적용 가능한 가이드라인의 예시를 내놨다.

한편 최근에는 투자 사기가 발생하기 쉬운 ICO를 대체할 수단으로 IEO(거래소 공개)가 주목 받기도 한다. IEO는 거래소에서 ICO 프로젝트의 발행토큰을 받아 거래소 회원으로 제한된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거래소가 중개인으로 참여해 프로젝트 신뢰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기 때문에 투자 위험이 감소할 수 있다. 제한된 투자자들에게만 판매하기 때문에 판매 효율도 높은 편이다.

다만 IEO 역시 완전한 대안은 아니다. 먼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반인 ‘탈중앙화 생태계’를 해칠 소지가 있다. 탈중앙화는 말 그대로 중앙 서버, 중개인이 없는 환경을 지칭하는데 IEO에는 거래소가 중개인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거래소의 권한이 막강해질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현재 거래소에 대한 입법 규제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거래소들이 자율적으로 규제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거래소 권한이 자율규제의 범위를 넘어 커지는 것도 위험하다”며 “ICO 프로젝트 팀이 계획에 맞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진행과정에 따라 투자금을 넣는 DAICO 등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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