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YS‧DJ‧JP ‘전성기’…굴곡진 정치인생

김종필 전 총리가 지난 4월 18일 신당동 자택에서 자유한국당 이인제 충남지사 후보를 만날 때 모습. /연합뉴스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3김(金) 시대’의 한 축이었던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오전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119구급대에 의해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병원 측은 밝혔다.

김 전 총리는 1926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공주중학교‧공주고등학교‧서울대학교 사범대‧육군사관학교 등을 졸업했다.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쿠데타에 가담했으며, 이후 중앙정보부 창설 및 초대부장에 취임하며 본격적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1963년에는 공화당 창당을 주도했으며, 6‧7‧8‧9‧10‧13‧14‧15‧16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또한 1971년부터 75년까지 4년 6개월 간 국무총리를 재임하기도 했다.

‘승승장구’한 만큼 김 전 총리의 정치인생에는 굴곡도 많았다. 1963년 공화당 창당과정에서의 이른바 ‘4대 의혹사건’, 1964년 ‘김종필-오히라 메모 사건’, 1980년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 등으로 권력에서 멀어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총리는 1986년 미국 유랑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면서, ‘제2의 전성기’의 신호탄을 쐈다. 비록 13대 대선에서는 낙선했지만, 1988년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석을 확보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민주화 바람’으로 비록 입지는 좁아졌지만, 1990년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연합을 통해서 ‘2인자’로서 큰 존재감을 드러냈다. 1992년 대선에서는 3당 합당과 함께 김영삼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하고, 1997년 대선에서는 선거 막판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키며 두 정권 탄생에 힘을 보탰다. 특히 김대중 당시 대선 후보와의 연합을 통해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일구기도 했다.

국민의정부 출범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공조하며 전성기를 이어갔지만, 이후 내각제 파동, 16대 총선과정에서의 앙금, 2001년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 등으로 공조관계는 마무리됐다. 이에 김 전 총리는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재기를 노렸지만, 4명 의원만을 배출하며 끝내 정계은퇴를 선언하게 됐다.

이러한 김 전 총리의 행적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한국정치의 민주화에 이바지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동시에,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지역주의 정치, 보스‧계파 정치 등 한국정치의 폐해를 심화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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