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소문날까 부당해도 ‘쉬쉬’… 전문가들 “만약 대비해 증거 챙겨야”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최근 한 미디어 콘텐츠기업을 둘러싸고 갑질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스타트업 근무환경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스타트업 특성상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시간을 넘는 경우가 많고, 업계에 소문이 날까봐 불이익을 당해도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 셀레브에서 근무했던 여직원 A씨는 지난 1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셀레브를 이끄는 임○○ 대표는 매일 고성을 지르고 폭언과 욕설을 일삼았다회식은 개인 사정과 관계없이 필수였다. 단체로 룸살롱에 가서 여직원도 여자를 골라 옆에 앉아야 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A씨는 공식 출근시간은 11시였지만 의미가 없었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밤샘회의를 하거나 갑자기 소집하는 경우도 있었다지난해 5월 공황장애 판정을 받고 퇴사했다. 퇴사 절차는 간단했다. 입사 할 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원은 가족이라는 임 대표의 철학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사건이 터진 이틀 뒤 임 대표는 자신의 SNS에 사임의사를 밝혔다. 그는 셀레브에 보여줬던 관심과 사랑이 저로 인해 변치 않기를 바란다. 직원들에게 무거운 짐을 남기고 떠나 미안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근로자들의 열정을 팔아 콘텐츠를 만든다는 여론의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대기업, 중소기업 등 일반 근로자들의 갑질 고발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111일부터 이달 15일까지 5개월여 동안 직장 내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제보는 200여건이 넘었다. 조현민 대한항공 상무의 갑질 사건이 터지면서 10건이 넘는 폭행 제보가 들어오기도 했다.

 

스타트업 갑질논란이 불거지면서 스타트업이 처한 열악한 환경까지 주목받고 있다. 스타트업은 보통 소수 직원들이 사업을 꾸려간다. 이에 부당한 업무량과 지시를 받아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다. 일부 기업은 가족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기도 한다. 현행법 상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위법으로 벌금 500만원이 부과된다.

 

일각에서는 스타트업 시장이 좁은 탓에 근로자가 갑질 피해 사실을 드러낼 경우, 오히려 재취업이나 이직이 어려워지는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IT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3년차 오아무개씨는 어느정도 규모가 큰 스타트업부터 신생 기업까지 스타트업에선 열정페이가 판친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거나 야근이나 밤샘 업무는 거의 일상이라며 지금은 적응됐지만 초반엔 8시에 퇴근하려고만 해도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이를 따지면 불만을 제시했다는 낙인이 찍힐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관계자는 최근 스타트업들도 업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시퇴근이나 한달에 한번 연차 필수 사용 등을 권하고 있다그럼에도 창업을 하다보면 대표들이 성과에 집중하기 때문에 근로자의 근무환경을 신경쓰지 못하거나 과한 폭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명백히 시정돼야 할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스타트업의 노무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회사에서 추가 노동을 과하게 요구한 경우에는 근로자가 근무했다는 증거를 남겨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총괄집행위원은 특히 미디어, IT 스타트업들이 열정을 빙자해 무료 노동이나 추가 근로를 요구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하지만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는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안타깝지만 근로자가 스스로 근무내용을 기록해야 한다. 근로기준법 상 사업주는 근무확인 서류를 3년 동안 보관해야 하는데, 대부분 보관하지 않거나 제출하지 않고 벌금으로 때운다고 말했다.

 

이어 오 집행위원은 근로자는 받지 못한 야근근로수당 등을 재직 및 퇴직과 관계없이 3년까지 청구할 수 있다“(부당한 근무환경을 대비하기 위해) 근로시간에 일을 했냐는 증거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다. 퇴근할 때 컴퓨터 시간을 찍어놓는다던지, SNS에 업무보고 시간을 캡쳐해놓는 방법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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