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분당차병원도 비선실세 의혹 휘말려…업계 “선정과정 투명하다면 제도는 유지해야”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가천대 길병원이 법인자금을 횡령해 정부 고위관계자에 상납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정부 지원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되기 위한 대가성 뇌물이라는 의혹이다. 앞서 같은 연구중심병원인 분당차병원과 서울대병원 등이 ‘비선실세’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는 가운데, 이번 경찰 수사로 연구개발(R&D)과 의료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중심병원이 재조명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19일 길병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법인자금을 횡령, 비자금을 조성해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에게 상납했다는 혐의다. 경찰은 2013년 복지부로부터 길병원이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된 것에 대한 대가성 차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압수 물품 분석을 마치는대로 공무원과 길병원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길병원 측은 “압수수색이 맞다”고 인정했지만 이외의 공식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아직 정확한 뇌물 규모는 나오지 않은 상태다.

연구중심병원은 신약과 새로운 의료‧진단기술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의료기관이다. 지난 2013년 정부는 예산 9000억원을 들여 연구중심병원을 선정하고 R&D사업을 지원해왔다.

현재 국내 연구중심병원은 10곳이다. 뇌물 의혹 논란에 휩싸인 가천대 길병원 외에도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아주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고려대 구로병원, 고려대 안암병원, 차의과학대 분당차병원, 경북대병원이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돼있다.

대형병원 입장에서도 연구를 강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IBM에서 AI(인공지능) 의사 ‘왓슨’을 개발함과 동시에 의료‧바이오 분야에 정보통신기술(ICT) 열풍이 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상진단기기, 채혈기기 등 주요 의료기기들도 AI 옷을 입기 시작했다. 환자 수 감소 등 현실적인 한계를 마주한 탓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연구중심병원의 특혜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분당차병원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비선진료’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차병원그룹 계열인 차움의원 의사였던 이주호 교수가 최순득‧최순실 이름으로 박 대통령에게 주사를 처방했다는 의혹이었다. 여기에 정부가 분당차병원에 대한 규제 완화 혜택을 줬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비판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서창석 서울대병원장도 2014년부터 박 전 대통령 주치의로 근무하며 김영재 성형외과 의사를 청와대에 드나들게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서울대병원노동조합은 올해 12월까지도 서 병원장의 해임건의안을 상정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길병원이 연구중심병원 선정을 위한 뇌물을 상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연구중심병원 입지는 점점 흔들리는 모양새다. 정부 돈을 지원받는다는 이유로 대형병원에 대한 여론의 뭇매도 거세지는 추세다. 현재 길병원은 인공지능 암센터를 세우고 AI의사 왓슨 등을 도입하는 등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연구중심병원 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당장 뇌물상납으로 여론이 나빠질 순 있지만 낮은 의료수가와 부족한 의료진 수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지원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의료‧바이오 연구를 위해 대학병원 등 기초연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의료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 도입과 연구개발은 병원 입장에서는 단순한 홍보효과 이상을 누린다. 인공지능 센터같은 직관적 홍보도 먹힌다. 아직 의료적 효용성은 떨어지지만 지금까지 기술 추세는 좋다”며 “소위 말하는 ‘빅5병원’에서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 않나. 이번 정부가 연구중심병원 선정과정을 투명하게 밝히고,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내세운다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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