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비토권 상실, 지분 매각 없어도 막을 방법 없어…산은 의지 부족 지적도

산업은행이 한국GM의 국내 철수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 그래픽 = 조현경 디자이너

한국GM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제너럴모터스(GM)의 국내 시장 철수 가능성을 공식 제기하면서 한국GM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산업은행의 태도 전환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GM의 국내 시장 철수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일각의 우려를 진화시킨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180도 말을 바꾼 셈이다.  


4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상욱 바른정당 국회의원에게 한국GM 사후관리 현황 보고서를 내고 한국GM의 경영여건 악화, GM 지분 처분제한 해제 임박, GM 해외철수 분위기 등을 종합할 때 GM이 한국을 떠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보고서에서 또 GM이 지분매각이 아닌 공장폐쇄를 통해 철수를 실행하면 저지할 수단이 없다는 의견을 냈다.

그동안 산업은행은 특별결의 거부권(비토권) 상실 이후 한국GM 지분을 지켜도 GM의 국내 시장 철수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경제적 손실을 보더라도 한국GM을 지킬 것”이라는 태도를 분명히 해왔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난달 한국GM 노동조합과 만나 “이동걸 회장이 한국GM 지분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았다”고도 전했다.

다만 산업은행이 최근 GM 본사 측에 경영진단 컨설팅과 감사 등을 요구했지만, 완강히 거부당한 뒤 더는 손을 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서면서 한국GM 노조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임한택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 지부장은 “정부에 이미 한국GM 직간접 노동자 30만명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뜻을 전했다”면서 “공장 분위기는 갈수록 침울해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GM 지분매각 관련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본부 입장. / 사진 = 시사저널e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선거대책본부 일자리위원회를 통해 “산업은행 지분의 한국GM의 미래 발전과 이에 대한 노동조합 동의 없이 매각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지만, 현재 정부는 GM 철수를 막을 대책이 없는 상태다. 임 지부장은 “GM 철수는 국가 경제 위기와 직결된다”며 “정부가 나서 GM과 협의하고 장기발전 전망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GM은 국내 진출 이후 지속해서 정부 지원을 받아왔다. 한국GM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법인세 203억원을 면제받았다. 같은 기간 법인세할 주민세 20억원도 면제됐다. 2010년까지 계속된 재산세, 취득세 등의 기타 지방세 면제를 통해 한국GM이 얻은 이익도 30억원에 달한다. 인천광역시는 한국GM 청라기술연구소에 600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한국GM은 2014년부터 작년까지 3년 연속 수천억대 적자를 낸 끝에 올 1분기에는 자본잠식에 빠졌다. GM이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면서 한국에서 유럽으로 반제품 형태로 수출하던 물량이 타격받았고, 지난해 신흥국 경기침체로 수출부진이 심화한 데다 부분파업까지 벌어지면서 대규모 손실이 났다. 한국GM 누적 적자는 2조원대에 달한다.

정치권에선 한국GM을 지키기 위한 의지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2009년 GM이 한국GM 주식 4219억원 어치를 인수하면서 한국GM 지분률이 17%로 떨어진 이후 산업은행은 GM과 장기 발전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약정하고 비토권 행사 가능 지분율을 15%로 낮췄지만, 지금은 지분율이 중요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지분율 17%인 소주주에 막혀 철수를 고려하지 않을 리 없다”면서 “공장폐쇄 등을 통해 철수를 실행할 가능성도 충분한 만큼 노조를 비롯한 지역사회, 정치권 모두가 나서서 GM 본사에 사업 지속 의지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지속가능한 장기 전망만 있다면 품질 및 생산성 향상은 물론 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 함께 기울이겠다는 태도다.

그런데도 산업은행은 여전히 올해 10월 이뤄질 비토권 상실에 위기의 방점을 찍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우리는 지분율 17%를 가진 소수주주에 불과해 대주주인 GM의 협조 없이는 경영통제에 한계가 있다”면서 “지난 3월 주주감사권 행사에 나섰지만, GM의 일방적인 자료 통제와 비협조적인 행태로 정확한 사실 파악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GM은 지난 몇 년간 국내 철수설이 불거질 때마다 “한국은 우리의 주요 거점”이라면서 철수 가능성을 부인해왔다. 현재 한국GM 부평·창원·군산·보령 4개 공장에 근무하는 근로자 등을 포함한 전체 인원은 1만6038명에 달한다. 한국GM 노조는 직간접으로 고용된 노동자를 합하면 총 30만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한국GM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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