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윤리적 불감증과 오만이 부른 위기…구태 씻어내 사회 책임 다하는 새 기업상을

최순실게이트가 외부로는 아직 조짐조차 드러나지 않았던 몇 해전 삼성그룹 고위관계자와 속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삼성전자가 애플과 세계 스마트폰시장 패권을 놓고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싸움을 치르고 있을 때였다.

그는 기술개발에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고 순간의 방심이나 실수조차 허락하지 않는 글로벌 시장의 냉혹한 경쟁상황과 긴장된 일상에서 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이나 내일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고 마치 벼랑위를 걷는 것처럼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기업의 절박한 현실이 그의 이야기에 생생하게 묻어 났다.

이런 그에게 필자는 살벌한 경쟁상황 못지 않게 삼성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면서도 위험성이 제대로 인식되고 있지 못한 위협을 언급했다. 국내에서는 누구도 삼성에게 ‘노(NO)’라고 하지 않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서 매우 우호적인 환경이 결국 오만과 자족을 불러 큰 재앙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력, 정부, 학계와 언론, 법조계까지 무조건 삼성을 비호하고 감싸주기 바쁜 현실에 자족하다가는 문제가 있어도 무시하거나 없는 것처럼 착각하는 법적·윤리적 불감증에 빠져 들기 쉽다는게 무엇보다 큰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 닥친 다음에야 뒤늦게 후회하는 사태가 초래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지난해 하반기 갤럭시노트7의 발화로 초래된 단종사태는 글로벌 무대에서 치르는 삼성의 피말리는 경쟁의 실체를 생생히 보여준 사례다. 더 좋은 제품을 더 빨리 내놓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자를 제치려는 초조함이 근본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도체 호황이 스마트폰의 공백을 메웠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회복하기 힘든 치명타를 입을 뻔한 아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얼마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사태야말로 삼성에게는 진짜 위기로 여겨질 더 뼈아픈 사건임에 틀림없다. 50대를 앞둔 나이로 아직 젊은 태가 역력한 국내 최대 기업그룹 총수가 구치소에 수감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필자도 안타까운 느낌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사실 국내 기업중 삼성보다 국민에게 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기업도 없을 것이다. 삼성그룹은 매출액이나 계열 기업의 면면이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기업그룹으로, 국내 고용인원만 25만명을 헤아리는 일자리의 중추기도 하다.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만으로 지난해 202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삼성전자는 특히 스마트폰 발화사건으로 위기에 처했던 지난해 4분기에도 매출 53조원에 영업이익이 9조원을 웃도는 분기별로는 사상최고의 실적을 기록했으니 기술적·재무적으로는 세계 어떤 기업과 견줘도 부끄럽지 않은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런 삼성의 위상은 국제적 평가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세계적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영국의 인터브랜드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에도 삼성의 위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7위로 평가된 순위보다도 삼성전자 앞뒤에 위치한 기업들의 면면에서 더 놀라움이 느껴진다. 삼성보다 순위가 앞선 기업들은 애플, 구글, 코카콜라, 마이크로소프트,도요타, IBM 등 하나같이 내노라하는 유명 기업들이다. 아마존, 메르세데스 벤츠, GE, BMW, 맥도날드, 디즈니, 인텔 등 쟁쟁한 기업들마저 삼성보다 뒷 순위에 그쳤다.


세계 어디를 가든 당당히 자리한 삼성의 광고판은 한국인으로서 가슴 뿌듯한 긍지를 느끼게 한다. 삼성 가전제품이나 스마트폰을 쓰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면 절로 어깨가 으쓱해진다. 이런 삼성이다보니 취준생들이 취업희망 리스트에서 최우선순위로 꼽는 것이 이상할게 없다.

하지만 이런 삼성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서 과연 명성에 걸맞은 준법의식과 높은 윤리의식,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국민의 속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사랑은 얻고 있지 못하다는게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오죽하면 법위의 삼성,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겠는가.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에서는 찜찜함과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삼성에게는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수사를 받고 그동안 경영권 승계를 위해 벌였던 일탈이 도마위에 올라 총수가 사법처리되는 상황에 처한 것이 큰 시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삼성이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초일류기업에 걸맞은 윤리의식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면모를 일신하는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는다면 지금의 상황이 되레 삼성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다.

삼성이 진정으로 이런 개혁 의지를 갖고 있다면 오랜기간 삼성의 파행적인 행태를 주도했던 인물들을 철저히 솎아내고 뉴삼성으로서 건강한 미래를 힘차게 열어갈 새로운 인재로 확실하게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멀쩡한 젊은이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해 큰 뜻을 펼치고 보람을 느끼기는 커녕 변칙과 탈법적인 일에 하수인으로 동원돼 알량한 금전적 보상과 양심사이에서 번민에 휩싸이게 하는 일은 당장 끝내야 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기자인 존 미클스웨이트와 에이드리언 울드리지는 ‘기업’이라는 저서에서 오늘날 국가의 국력을 가늠하는 잣대는 군함의 숫자가 아닌 한 국가가 자랑할 수 있는 기업의 숫자임을 통찰했다. 이 점에서 삼성은 우리나라의 국력을 키우는데 그동안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역할을 해야할 기업이다. 

 

삼성이 구태​를 말끔히 씻어내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는 변신을 이룸으로써 기술력과 재무 실적만 세계 초일류가 아닌 진정으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모범적인 기업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국가와 국민의 성공을 위해서도 삼성은 실패해서는 결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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