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경쟁‧드라마는 협업…궁극의 노림수는 ‘중국’

할리우드 스튜디오 워너브라더스가 처음으로 제작한 한국영화 '밀정'이 이번 주(7일) 개봉한다. 배우 엄태구, 신성록, 송강호, 한지민, 공유, 김지운 감독(왼쪽부터)이 25일 오후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 언론시사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세계적인 영화제작사 워너브라더스가 한국 영화로 국내시장에 상륙한다. 국내업계 1위 CJ E&M도 9월에만 두 기대작을 연이어 내놓는다. 동시에 CJ E&M은 드라마 미국 진출의 단초도 마련했다. 미국 한류시장 내 영향력이 큰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드라마피버와 공동제작에 합의했다. 흥미롭게도 드라마피버의 모회사는 워너브라더스다. 서로의 안방을 노린 두 기업이 경쟁과 협업을 동시에 펼치는 모양새다.

5일 영화업계에 따르면 워너브라더스가 처음 국내에서 제작‧투자하는 영화 ‘밀정’이 이번 주(7일) 공식 개봉한다. 연출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김지운 감독이 맡았다. 충무로의 가장 뜨거운 두 배우 송강호와 공유의 투톱주연도 단연 관심을 끈다.

영화 제작비는 마케팅 비용을 포함해 140억원에 이른다. 워너브러더스는 파라마운트, 20세기폭스, 디즈니 등과 함께 북미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핵심 스튜디오다. 거물의 상륙인 셈이다. 이에 맞서는 국내 업계 1위는 CJ E&M이다. CJ E&M은 지난해 국내에서 영화 한 편당 평균 294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워너브라더스는 하반기에 이병헌‧공효진 주연의 ‘싱글라이더’도 시장에 내놓는다. 올해 실적에 따라 내년 배급작을 5편 내외로 늘리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국내사업 총지휘자는 최재원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대표다. 최 대표는 아이픽쳐스와 바른손, NEW 등을 거친 국내 대표적인 영화제작자다. 김지운 감독과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함께 작업했다.

앞서 20세기폭스코리아는 상반기에 ‘곡성’으로 688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누적매출액은 560억원에 이른다. 2010년부터 투자를 시작한 이래 5번 째 영화에서 첫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 때문에 ‘밀정’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졌다. ‘밀정’은 손익분기점이 420~450만명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휴가 낀 덕에 이 정도 관객선은 쉽게 넘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같은 기간 CJ E&M은 ‘고산자, 대동여지도’와 ‘아수라’를 연이어 내놓는다.

워너브라더스와 20세기폭스 등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국내시장의 안정성을 믿고 진출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니크 에스크라비삿 워너브라더스 인터내셔널 부문 사장은 지난달 영화전문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자국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는 나라”라며 “자국영화 시장점유율이 50%이상 유지되는 나라는 흔치 않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보다 궁극적인 노림수는 한반도 바깥을 향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장민지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분석팀 박사는 “중국시장의 존재를 살펴야 한다. 미국업계는 한국 콘텐츠의 중국시장 활용도를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며 “중국에서 가장 활용도가 높은 콘텐츠가 한국작품이고 중국시장에서 인기를 끈 이 콘텐츠는 다른 아시아 국가로 확장되는 경향을 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도 매력적이지만 실제 군침을 흘리는 시장은 대륙이라는 얘기다. 한류현상을 등에 업은 국내콘텐츠는 중화권과 동남아 등 아시아 각지에서 소구력이 높다. 장 박사는 “한국은 인구 대비 콘텐츠 소비량이 많은 국가지만, 할리우드 업체가 여럿 들어와 노릴 만큼의 사이즈는 아니다”라며 “중국 콘텐츠 내수시장이 커지면서 이를 공략할 다각적 전략의 하나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방점은 한국시장보다 한국콘텐츠에 찍혀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진출 덕에 대기업 중심으로 짜인 내수 투자배급 시장이 활기를 보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들은 제작비 대부분을 투자하고 판권을 확보하면서 제작은 제작사에 일임한다. 이 구조가 국내 영화시장에 자리 잡은 투자 체계다. 자본력을 갖춘 투자배급사가 소수이고 제작사는 난립하기 때문에 제작사 입김이 극도로 약할 수밖에 없다.

영화제작자 출신의 한 연구자는 “당분간은 각 스튜디오가 흥행을 담보하는 시나리오와 감독을 선점하려 경쟁할 거다. 시장에 돈이 많아지는 건 좋은 신호”라며 “과다하게 돈이 유입되면 거품이 생길 순 있지만 눈먼 돈이 많았던 1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선수들이 들어오니 양상은 다를 것 같다”고 내다봤다.

영화부문에서 글로벌 거물이 안방시장을 노리는 사이 CJ E&M은 드라마를 들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CJ E&M의 드라마제작 자회사 스튜디오 드래곤은 미국 동영상 플랫폼 ‘드라마 피버’와 함께 한국드라마를 만들기로 했다. 두 회사는 지난달 31일 공동제작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앞으로 3년 내 2개 콘텐츠 공동 기획‧개발‧제작하기로 했다. 미국 시장 내 한류수요를 노리겠다는 심산이다.

 

CJ E&M의 드라마제작사인 스튜디오 드래곤이 제작한 '굿와이프'. 이 작품은 미드의 리메이크작이기도 하다. / 사진=CJ E&M

흥미로운 점은 드라마피버의 모회사가 워너브라더스라는 점이다. 2009년 한국계인 박석 씨와 백승 씨가 공동창업한 드라마피버는 한국드라마와 예능을 시청할 수 있는 대표적인 미국 OTT다. 미국 내 한류팬들의 근거지라 불린다. 워너브라더스는 2014년 일본 소프트뱅크에 인수된 드라마피버를 올해 2월 인수했다. 한국콘텐츠에 대한 의지를 단적으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잘 살펴보면 CJ E&M과 드라마피버의 협업 이면에도 중국시장이 있다. 스튜디오 드래곤이 하반기에 야심작으로 내놓는 드라마 중 ‘안투라지’와 ‘푸른바다의 전설’은 중국 OTT채널에서도 방영된다. ‘푸른바다의 전설’은 한류시장 최고스타인 전지현과 이민호가 모두 나온다. 안투라지는 미드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국내 미디어환경 변화 탓에 중국시장은 점점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정윤미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TV 광고비 집행 규모의 성장률이 둔화된 상황에서 방송 제작비는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며 “따라서 방송 콘텐츠의 2차 유통시장에서 해외 수출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새 수익구조는 스튜디오 드래곤과 드라마피버의 협업에서도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제작사와 미국 OTT, 중국 OTT 간 제작과 방영의 싸이클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일단 CJ E&M과 워너브라더스는 서로의 강점을 주고받으며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모양새다. 장민지 박사는 “좋은 신호다. CJ E&M은 ‘굿와이프’나 ‘안투라지’에서 나타나듯 미드를 하나의 콘텐츠삼아 한국화 시키려 하고 워너브라더스 등 미국업체는 한국 콘텐츠를 활용하려 한다. 서로에게서 얻을 게 분명한 거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협업이 지속될 가능성은 드물다. 워너브라더스와 20세기폭스 뿐 아니라 넷플릭스도 아시아권에 상륙하면서 콘텐츠업계가 무한경쟁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CJ E&M과 드라마피버의 공동제작 드라마의 운명에 따라 정면경쟁의 시기가 결정될 전망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