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5조원 IFV 도입···내년 상반기 사업자 선정
현지 생산·공급망 안정성이 핵심 변수 부상
K-방산, 폴란드·루마니아·사우디·미국서 ‘현지화 체계’ 총력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레드백 장갑차 모습. / 사진=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레드백 장갑차 모습. / 사진=한화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루마니아가 추진 중인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IFV) 사업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시한 70% 현지 생산안이 주목받고 있다. 몇 년째 이어진 K방산의 현지화 전략이 동유럽에서도 핵심 평가 기준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루마니아·사우디·미국을 아우르는 현지 생산 체계를 앞세워 수주전 고삐를 죄고 있다.

20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루마니아는 2031년까지 약 4조8000억~5조원 규모로 장갑차 246대를 도입할 계획이다. 사업자 선정은 내년 상반기 중 이뤄질 전망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레드백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레드백은 이미 호주에서 3조2000억원 규모의 본계약을 체결한 바 있어 유럽에서도 ‘검증된 플랫폼’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루마니아 사업의 특징은 성능 경쟁을 넘어 현지 생산 비율, 부품 자립, 공급망 통제력이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루마니아 정부가 요구하는 현지화 범위는 차체 생산을 넘어 엔진·포탑·전자장비·소프트웨어까지 포괄한다. 단순 조립 수준을 넘는 현지 공장 이전이 필수적이다.

배진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루마니아 법인장이 지난해 11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유럽 랜드워페어 컨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배진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루마니아 법인장이 지난해 11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유럽 랜드워페어 컨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 70% 현지화 앞세운 레드백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루마니아 정부에 설비 이전뿐 아니라 인력 양성 프로그램, R&D 협력, 장기 유지보수(MRO) 체계까지 패키지로 제안했다. 배진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루마니아 법인장은 최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레드백은 전체 공정의 약 70%를 루마니아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된 유일한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루마니아 업체들이 단순 하청이 아니라 글로벌 밸류체인의 일부로 편입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이미 30여개 루마니아 업체와 공급망 협의가 진행됐고 정부와 군이 요구한 수준의 산업 참여도를 맞추는 데 무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공급망 리스크도 핵심 변수다. 루마니아 정부는 주요 부품 조달처가 헝가리에 집중된 경쟁사 모델의 경우 정치적 변수에 따른 공급 중단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터 배 대표는 “정치 상황 변화나 국경 통과 제약이 생기면 48시간 만에 부품 수급이 막힐 수 있는 구조는 루마니아 입장에선 감내하기 어려운 위험”이라며 “생산 기반을 루마니아 안에 두는 것이 안정성과 확실성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고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루마니아에서 현지 생산 비중을 크게 늘리는 것은 유럽이 ‘방산 블록화’ 기조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8000억 유로 규모의 재무장 계획을 내놓으며 ‘유럽산 우선 구매’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역외기업이 유럽 대형 조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현지 생산 비중, 기술 이전, 인력 양성, 정비시설 구축 등을 충족해야 한다는 조건이 사실상 전제 요건으로 떠올랐다. 단순 조립 비중을 채우는 정도로는 경쟁이 되지 않는 환경이 된 것이다.

루마니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9 생산시설을 준비 중인 지역이기도 하다. 레드백 사업이 성사될 경우 생산·정비 인프라를 통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이번 장갑차 사업이 성사될 경우 루마니아는 폴란드와 더불어 동유럽에서 가장 큰 지상체계 생산 허브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 사진=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 사진=한화

◇ 폴란드·사우디·미국까지 확장···‘현지 생산 체계’ 전방위 구축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루마니아 외에도 폴란드·사우디·미국으로 생산 거점을 확장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WB그룹과 유도미사일을 현지에서 생산하기 위한 합작법인(JV)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생산시설 부지와 인력, 공정 구축까지 포함한 현지 생산 체계를 마련하는 방식이다. 한상윤 IR 담당 전무는 지난 3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부지 확보와 공장 건설을 현지 파트너와 조율해 구체화 중”이라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K9·천무·장갑차·탄약 등 여러 무기체계 도입 논의가 진행 중이다. 사우디가 2030년까지 군수품의 현지 생산 비율을 50%까지 끌어올리기로 한 만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사우디 내 생산기지 설립이나 합작법인(JV) 협력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중동·북아프리카(MENA) 총괄법인을 설립, 현지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55㎜ 추진장약(MCS)의 현지 생산화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155㎜ 탄약 부족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현지 생산을 통해 미 육군과 동맹국의 안정적 탄약 공급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북미 최대 지상방산 전시회 AUSA 2025에 참가해 K9A2 차륜형 자주포, 155㎜ 추진장약을 공개하기도 했다.

폴란드에서 하역되는 K2 전차. / 사진=현대로템
폴란드에서 하역되는 K2 전차. / 사진=현대로템

◇ LIG넥스원·KAI·현대로템도 ‘현지화 전환’ 가세

LIG넥스원도 최근 이사회에서 해외 JV 설립을 승인하며 현지 생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동 3개국(UAE·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과 조 단위 ‘천궁-II’ 수출을 따낸 만큼 첫 JV도 이 지역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KAI는 폴란드에 유럽 법인을 세우고 FA-50 유지보수(MRO) 센터 설치를 협의하고 있다. 현대로템도 폴란드와 K2 전차 261대 2차 이행계약을 체결하면서 일부 현지 생산에 합의했다.

현지 생산 비중이 높아지면 법인세와 고용이 해당국에 귀속된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설계·포탑·전자장비 등 고부가 공정은 한국 본사가 담당하는 구조다. 방산기업 관계자는 “국내 생산기반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재편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등 주요 도입국이 최소 50~80%의 현지 참여를 요구하는 만큼 현지화는 선택이 아니라 시장 진입의 선행 조건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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