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450조·SK 128조·현대차 125조·LG 100조원
HD현대 15조·한화 11조·셀트리온 4조원 약속···시기는 제각각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삼성전자와 SK, 현대차그룹, LG 등 주요 기업들이 향후 5년간 국내에 수백조원을 투자한다. 이번 조치는 한미 관세 협상의 핵심 쟁점을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공개 이후 관세 후속 효과를 국내 투자와 생산 확대까지 연결시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주요 기업들이 발맞춰 협력하겠다는 의미도 담겼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실은 16일 한미간 조인트 팩트시트 도출과 관련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내 주요 그룹 총수 초청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간 합동회의’를 열고 후속 대응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 여승우 한화 부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참석했다.

◇삼성, 국내 생산시설 대폭 확대···R&D 포함 5년간 총 450조원 투자

삼성그룹은 향후 5년간 국내 연구·개발(R&D)와 생산시설 확충에 총 450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이날 임시경영위원회를 열고 경기도 평택사업장 2단지에 들어설 5라인(P5) 골조 공사 투자 계획을 전격 승인했다. P5는 2028년 가동 예정이며, 완공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평택의 역할이 확대될 전망이다.

국내 생산설비 확장도 이어진다. 삼성SDI는 인공지능(AI) 인프라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전남에 2028년까지 1만5000평 규모의 GPU 데이터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또한 경북 구미(1공장)에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재용 회장은 이날 민관 합동회의에서 “저희가 짓는 AI 데이터센터는 수도권 이외 지역에 짓는 걸 원칙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삼성SDI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울산 공장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최근 인수를 완료한 독일 플랙트그룹의 국내 생산라인 구축도 본격화할 계획이다.

삼성은 또한 지난 9월 2030년까지 6만명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청년희망터와 삼성청년 SW, AI 아카데미(SSAFY) 등을 통해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삼성은 또 1~3차 협력사 경영 부담 완화를 위해 설비 투자, 기술 개발, 운영 자금 등에 필요한 자금 대출 저리 지원, 중소·중견 협력사에 대한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 반도체·디스플레이 사업장 상주 협력사 임직원 대상 인센티브 지급 등을 강화한다고 덧붙였다.

◇SK그룹, AI·반도체·에너지에 투자·고용 집중···2028년까지 128조 국내투자

SK그룹도 오는 2028년까지 128조원 이상을 국내에 투자한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이날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 자리에서 2028년까지 예정된 128조원 상당의 국내 투자를 차질 없이 이행해 국내 일자리 창출에 적극 기여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먼저 적극적 국내 투자를 통한 실질적 경제성장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메모리 수요 급증과 공정의 첨단화로 당초 계획 대비 투자비가 대폭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확한 금액은 추계중이라는 게 SK측 설명이다.

또한 반도체 수요 및 업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투자를 확대해 최종 계획(팹4)이 마무리되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에 대한 총 투자규모만 6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언급한 투자액보다 높아졌는데, 이는 AI 수요로 고성능 부가가치 공정이 늘고 첨단화 설비 투자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라고 SK 측은 덧붙였다. 최 회장도 이날 회의에서 "용인반도체클러스터만으로 600조원 정도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라며 "시장수요에 따라 건설 속도는 조절해야겠지만, 저희가 분명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 기여할 계획이다. SK는 매년 8000명 이상을 채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 이상 늘어날 수 있단 입장이다.

SK하이닉스는 국내 반도체 소부장(소재· 장비·부품)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트리니티 팹'을 8600억원 규모로 정부와 공동 구축 중이다. 이는 용인반도체클러스터에 세워지는 ‘첨단 반도체 개발용 미니 팹’으로 소부장 기업들은 이곳에서 자체 개발 제품을 실증 테스트해 양산성을 검증할 수 있다. 비영리 재단법인 형태로 운영되며 소부장 협력사뿐 아니라 연구기관, 학계, 스타트업 등 다양한 참여 주체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아울러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등은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협력해 울산에 AI 데이터센터 'SK AI 데이터센터 울산'을 건설 중이다. 2027년 상업가동 시 하이퍼스케일급(100MW) 규모로 운영돼 동북아 AI 허브로 기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픈AI와는 한반도 서남권 지역에 AI 데이터센터를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정관 산업부 장관. / 사진=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정관 산업부 장관. / 사진=연합뉴스

◇현대차그룹, 2030년까지 125조 투자···1차 협력사 부담 대미 수출관세 전액 지원

이번 관세협상의 최대 수혜기업으로 꼽힌 현대차그룹은 내년부터 2030년까지 국내에 125조2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직전 5년간 국내 투자액(89조1000억원)보다 36조1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현대차그룹은 또 올해 1차 협력업체들이 부담한 대미 수출관세 전액을 지원하기로 했다.

부문별로는 신사업 투자가 50조5000억원으로 가장 크다. 국내 산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AI와 로봇산업을 육성하는 데 힘을 쏟겠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설명이다. 지난달 엔비디아와 피지컬AI 애플리케이션 센터 및 데이터센터 등을 건립하기로 한 데 이어, 국내에 직접 로봇 제조 공장을 짓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로봇 파운드리 시장 진출도 공식화했다. 국내 로봇 공장에서는 제조 노하우가 부족한 중소기업 제품을 위탁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수소생태계 구축에도 힘쓴다.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서남권에 1GW(기가와트) 규모 ‘PEM 수전해 플랜트’(물을 전기 분해해 그린 수소를 만드는 시설)를 건설한다.

현대차그룹은 15%로 문서화된 미국의 자동차 품목 관세와 관련해, 1차 협력사들의 관세 부담을 대신 부담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현대차·기아에 납품하는 1차 협력사가 올해 부담해야 하는 대미 관세를 소급 적용해 전액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역대 최대 규모의 중장기 국내 투자로 대한민국 경제 활력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며 “협력사 관세 지원과 상생 협력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LG그룹, LG, 5년간 100조원 투자···60조는 소부장 투자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향후 5년간 계획한 100조원 국내 투자 중 60조원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술 개발과 확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구 회장은 산업 전반의 AI 도입과 체질 개선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정부가 확보한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은 국내 기업들의 AI 도입 확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LG도 다양한 사업 영역에 AI를 적용해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광모 회장은 "국내 산업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국내 생태계의 질적 경쟁력을 높여 수출과 성장을 이끌고, 그 결실이 다시 국내로 재투자되는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히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밖에 HD현대는 향후 5년간 약 15조원의 국내 투자를 진행한다. 에너지 분야와 AI 시대 로봇 사업에 8조원, 조선해양 분야에 7조원을 투입한다.

한화그룹은 국내 조선과 방산 분야에서만 향후 5년간 1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셀트리온은 송도, 충북 오창, 충남 예산에 4조원 시설 투자를 한다며 지역 균형 발전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이외에도 향후 3년간 4조원을 국내에 투자하고 연구개발(R&D) 투자는 2027년 1조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처럼 한국 주요 기업들이 대규모 국내 투자를 약속한 것은 제한된 투자재원 속에서도 해외로의 과도한 이전을 막고, 국내 투자 축소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서 책임을 분명히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초청된 기업 대부분이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의 이미지가 강한 상황에서, 이번 회의는 한국 경제의 중심축으로서의 역할을 확고히 하겠다는 의미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 직후 열린 회의였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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