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입항세 유예 직후, 글로벌 해운사 잇단 발주 ‘中 쏠림’
납기·가격 경쟁서 밀린 K조선, 반사이익 기대 ‘무색’
하팍로이드 40억달러·머스크 23억달러 계약, 모두 중국행
LNG·컨테이너선 수주로 반전 노리는 K조선, “내년이 분기점”

HD한국조선해양이 2023년 인도한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시운전 모습. / 사진=HD한국조선해양
HD한국조선해양이 2023년 인도한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시운전 모습. / 사진=HD한국조선해양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미국의 중국 선박 입항세 유예 조치 직후 글로벌 해운사들의 신조 발주가 잇따라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하팍로이드에 이어 머스크까지 액화천연가스(LNG)·암모니아 이중연료 추진 컨테이너선의 건조를 중국 조선소에 맡기면서 한국 조선업계가 기대했던 ‘반사이익 구도’는 사실상 힘을 잃었다는 평가다.

발주가 중국으로 몰린 이유는 결국 납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조선소들은 이미 LNG 운반선 등 고부가 선종으로 도크가 가득 차 있어 가장 빠른 인도 시점이 2029년 이후다. 반면 중국 조선소들은 2027~2028년 인도가 가능하다. 선주 입장에서는 불과 1~2년 차이지만 운항 개시 시점이 빠른 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 가격도 중국 조선소가 더 저렴하다.

◇ 입항세 유예 후 중국행 발주 러시

7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독일 하팍로이드는 최근 중국 양쯔장조선에 1만6800TEU급 12척, 뉴타임즈조선에 9200TEU급 12척의 컨테이너선을 발주했다. 계약 규모는 약 40억달러(5조8000억원)에 달한다. 24척 모두 LNG 이중연료 엔진을 탑재하고 암모니아 전환이 가능한 ‘암모니아 레디’ 설계가 적용된다. 하팍로이드 측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22년 대비 3분의 1 줄이겠다”며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선박 운영으로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덴마크 머스크도 중국 뉴타임즈조선에 1만8000TEU급 LNG 이중연료 추진 컨테이너선 8척(옵션 4척 포함)을 약 23억달러(3조3300억원)에 발주했다. 1척당 선가는 1억9300만달러 수준으로, 업계가 예상했던 25억~28억달러 수준보다 2억~5억달러 낮았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낮은 가격에 계약이 이뤄졌다”며 “중국 조선업계가 공격적인 입찰로 한국 조선소와 격차를 크게 벌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팍로이드와 머스크는 모두 탄소중립을 내세우며 메탄올, LNG, 암모니아 등 다양한 연료를 조합한 ‘다연료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두 해운사의 이번 발주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유럽 해운사의 탈탄소 선박 전환 흐름이 본격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한국 조선사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 강화에 따라 친환경 선박 기술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 조선소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두 해운사가 나란히 중국 조선소를 택했기 때문이다.

중국 민영 최대 조선사 양쯔장조선. / 사진=양쯔장조선
중국 민영 최대 조선사 양쯔장조선. / 사진=양쯔장조선

◇ 납기 격차가 불러온 수주 역전?

업계 안팎에서는 “결국 납기와 가격 문제”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국 조선소의 슬롯은 대부분 LNG 운반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 해양플랜트 등 물량으로 묶여 있고, 인도 일정이 2029년 이후로 밀려 있다. 반면 중국 조선소는 2027~2028년 인도가 가능하다. 실제로 머스크의 이번 발주는 납기가 빠른 도크 확보 경쟁에서 갈린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1위 해운사 MSC는 지난 7월 중국 내 5개 조선소에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3위 CMA-CGM도 10척(약 3조원 규모)을 중국선박공업그룹(CSSC)에 발주했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미국의 입항세 시행이 중국 조선소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란 기대가 컸지만, 결과적으로 ‘유예’ 조치가 나오면서 발주가 오히려 중국으로 쏠리는 역전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글로벌 컨테이너선 수주잔량은 중국이 694만TEU로 전체의 74%를 차지했다. 한국은 198만TEU(21.1%)에 그쳤다. 상반기 HD현대미포조선과 한화오션이 각각 21척, 13척의 컨테이너선을 수주하며 선전했지만, 하반기 들어 대형 발주전에서는 고배를 마시는 일이 많아졌다.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입항세가 ‘중국산 선박 운항’에 적용되는 것이지 조선소 발주 자체를 제한하진 않는다”며 “선주 입장에선 가격과 납기, 금융조건을 종합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책 변수보다 현실적인 조건이 발주처 결정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이런 흐름이 단기 수주전에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문제다. 컨테이너선은 반복 생산과 표준화 비중이 높아 ‘규모의 경제’가 곧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발주가 중국으로 몰리면 설계, 기자재, 인력까지 생태계 전체가 옮겨갈 수 있다. 국내 조선소가 고부가 LNG선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고착시키면 중장기적으로 시장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 내년이 분기점···컨테이너선·LNG선 반등 노리는 K조선

그렇다고 국내 업계의 전망이 어둡기만 한 건 아니다. 중국 조선소들도 하팍로이드, 머스크, MSC 등 대형 프로젝트를 잇달아 따내며 도크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어서다. 

국내 조선업계는 당분간 주력인 LNG운반선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입장이다. 이운석 HD한국조선해양 전략마케팅 전무는 지난 3일 열린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하반기 들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LNG 프로젝트 승인이 재개되면서 관련 신규 수요가 나올 것”이라며 “통상 LNG 100만t당 운반선 2척 정도가 필요하다. 거의 100척 이상의 신규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르면 내년부터는 국내 조선소도 대규모 컨테이너선 수주를 따낼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이 전무는 “컨테이너선 시장은 대형선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고, 주요 해운사들이 이를 ‘기반 시설’처럼 보고 꾸준히 신규 발주를 검토하고 있다”며 ”여러 해운사와 신조 논의를 이어가고 있고, 실제 계약은 내년께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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