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 착수···2029년 건조 목표
글로벌 쇄빙선 시장 10년간 1.5~2배 성장 전망
미국도 2037년까지 쇄빙선 10척 발주 예상
한화 LNG선 실적·삼성 드릴십 경험·HD현대 통합 시너지

한화오션이 극지연구소에 제안해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차세대 쇄빙연구선 조감도. /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이 극지연구소에 제안해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차세대 쇄빙연구선 조감도. / 사진=한화오션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북극항로 개척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한국 조선업계가 ‘K-쇄빙선’을 새로운 수출산업으로 키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가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에 착수한 가운데 조선 3사가 축적한 극지선 경험과 기술력이 글로벌 발주 시장에서 러시아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24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따르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는 지난 18일 차세대 쇄빙연구선 책임감리용역을 발주했다. 총 34억7800만원 규모로, 새 쇄빙연구선 설계 및 건조 전 과정을 관리·감독하는 계약이다. 

극지연구소 관계자는 “현재는 차세대 쇄빙연구선 전체 공정을 수립하는 단계”라며 “내년부터 착공·기공·진수·인도 등 네 차례 공정을 연차별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 초까지는 설계 위주로 진행되지만 하반기 착공에 들어가면 블록 조립 등 실질적인 건조가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발주는 단순 용역을 넘어 실질적 건조 절차 착수의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북극항로 시대 주도’라는 국정 과제를 구체화하면서 동시에 한국 조선업계가 글로벌 쇄빙선 시장에서 수출산업화 기회를 잡을 발판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북극항로 예상 지도. / 자료=미국 북극연구소
북극항로 예상 지도. / 자료=미국 북극연구소

◇ 북극항로, ‘대체 항로’로 부상

북극항로는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이어지는 기존 수에즈 운하 경로보다 약 7000km 짧다. 운항일수 기준으로 열흘 이상 단축돼 연료비 절감과 선박 회전율 상승 효과가 크다. 홍해 사태와 중동 불안정으로 수에즈 운하의 리스크가 심화하면서 북극항로는 ‘보험 항로’ 성격까지 띠게 됐다.

실제 러시아 교통국에 따르면 지난해 북극항로 물동량은 3790만톤(t)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환적 화물만 따져도 308만t으로 2016년 대비 15배 이상 증가했다. 여전히 수에즈 운하(연간 15억7000만t)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성장세가 뚜렷하다.

◇ 러시아 독점 흔들리는 쇄빙선 발주

북극항로 상업화의 전제조건은 얼음을 깨고 길을 내는 쇄빙선이다. 러시아는 현재 40여 척의 쇄빙선을 보유하며 독주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제재로 인해 서방 발주처들이 협력을 꺼리고 있다. 미국·유럽은 조선 역량 부족으로 외부 파트너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극항로가 새 운반 경로로 떠오르면서 쇄빙선 시장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들은 글로벌 쇄빙선 시장이 현재 수십억 달러(약 수조 원) 규모에서 향후 10년간 1.5배~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기관별 전망은 다르지만, 올해 약 19억 달러 수준에서 2030년대 중반에는 30억달러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미국도 북극항로와 알래스카 LNG 개발을 추진하며 쇄빙선 수요를 키우고 있다. 류민철 한국해양대학교 교수가 쓴 ‘미국 조선사업 분석 및 한미 협력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37년까지 미국에서만 신규 쇄빙선 10척가량 발주가 예상된다. 향후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유럽-미국서부간 운항이 늘어나면 추가 발주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한화오션이 건조한 쇄빙LNG선 ‘크리스토프 데 마제리(Christophe de Margerie)’호/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이 건조한 쇄빙LNG선 ‘크리스토프 데 마제리(Christophe de Margerie)’호/ 사진=한화오션

◇ 국내 조선 3사, 실적·기술 앞세워 북극 개척 경쟁 가세

국내 조선사 가운데 가장 많은 쇄빙선 건조 경험을 보유한 곳은 한화오션이다. 2014년 15척, 2020년 6척 등 총 21척의 쇄빙 LNG운반선을 수주하는 등 쇄빙 LNG 운반선 분야에선 세계 1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 7월에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가 추진하는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기술력을 다시 입증했다. 새 연구선은 총 톤수 1만6560t, LNG 이중연료 전기추진 체계, 1.5m 두께 얼음을 양방향으로 깨는 능력을 갖췄다. 2029년까지 건조가 완료될 예정이다.

삼성중공업은 2005년 세계 최초 양방향 쇄빙선을 수주하며 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에는 극지 환경에서도 시추가 가능한 세계 최초 극지 드릴십을 인도했다. 다만 최근에는 러시아 즈베즈다로부터 수주했던 쇄빙 LNG 운반선 10척 계약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해지되면서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려 있다.

HD현대중공업은 계열사 HD현대미포와의 통합 법인을 통해 특수목적선 시장 진출을 강화하고 있다. 북극 주권 강화 흐름에 맞춰 쇄빙선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HD현대중공업이 가진 쇄빙선 건조 기술력과 HD현대미포의 생산능력을 결합해, 미포조선이 보유한 4개 도크 중 2개를 쇄빙선·군함 등 특수선 건조에 투입한다. 회사는 오는 2035년까지 쇄빙선 등 특수목적선 매출 1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지난달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HD현대중공업 측은 “쇄빙선 등 특수목적선 시장은 건조 실적과 연구개발 역량, 즉 트랙 레코드가 발주 경쟁의 핵심”이라며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가 보유한 실적을 통합해 쇄빙선과 해상풍력 지원선(WITV) 등 성장 부문 점유율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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