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 최근 신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북극항로의 개척이 언론에 부상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급격한 진전으로 인해 그동안 얼어붙어 있던 북극이 빠르게 해빙되고 있다. 이로 인해 ‘북극항로(Arctic Route)’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해상물류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북극항로는 단순한 새로운 해상길을 넘어, 향후 글로벌 물류 패권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의 중심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북극항로에 대한 논의는 이미 1990년대 소련 고르바초프 정권 시절부터 시작되었지만, 당시에는 지구온난화의 속도가 지금처럼 급박하지 않아 실질적인 진전이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북극해의 해빙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면서, 원자력 추진 또는 액화천연가스(LNG) 추진 쇄빙선을 통한 북극항로 운항이 현실화되고 있다.
◇ 대한민국의 지리적 이점과 북극항로의 경쟁력
대한민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끝자락에 위치하여 북극항로의 전략적 기점이 될 수 있는 잇점이 있다. 이는 부산항 등 우리 항만에서 유럽 주요 항구까지 약 2만2000km의 기존 수에즈 운하 경로보다 훨씬 짧은 약 1만5000km의 운송거리와 희망봉 우회시에 비해 약 20일 단축된 운송 시간을 제공한다. 기존 항로와 비교했을 때, 북극항로는 운송 거리와 시간 측면에서 크게 유리하며, 수에즈 운하의 높은 통과료와 긴 항해 시간, 연료비 부담, 해상 테러 등 기존 경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수에즈 운하 인근 홍해에서 발생하는 후티 반군의 공격, 이로 인한 희망봉 우회 등의 불안정성이 북극항로의 대안적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 중국의 적극적 활용과 한국의 미온적 대응
현재 북극항로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 선박들이 북극항로 수송량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으며, 일부 컨테이너선 운항 사례도 성공적으로 축적되고 있다. 또한 북극항로의 수송량 대부분은 러시아와 중국 화물이고 광물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현대글로비스가 벌크 화물 운송에 성공한 사례는 있지만, HMM, 머스크, 하팍로이드 등을 포함한 주요 글로벌 해운사들은 컨테이너선 운항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글로벌 해상물류의 중심지로 도약하고자 하는 한국의 전략적 목표와 맞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 해운선사들도 북극항로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과 준비가 필요하다.
◇ 북극항로의 잠재 리스크와 국제정치적 변수
물론 북극항로가 상업적으로 완전히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주요 장애물이 존재한다. 첫째, 해빙 시기가 한정되어 있고, 결빙 기간 중에는 쇄빙선의 도움 없이는 운항이 어렵다. 둘째, 쇄빙선 다수가 러시아에 의해 운영되며, 이에 따른 이용료나 도선료 부담이 발생한다. 셋째,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이 북극항로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을 견제하고 있어, 한국이 북극항로를 적극 활용하는 데 정치적 제약이 따를 가능성도 있다. 참고로 한국은 북극권에 주권적인 영토를 가진 8개국(러시아,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스웨덴, 핀란드)에 속하지 않아 자원개발이나 항로 개발에서 한계도 존재한다.
◇ 무역대국 한국의 전략적 대응 방안
한국은 세계 5위의 수출 대국이자 해상운송에 의한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이다. 따라서 북극항로를 비롯한 복수의 해상운송 경로 확보는 필수적이다. 현재처럼 싱가포르-말라카 해협-수에즈 운하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공급망 리스크 측면에서 취약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TCR, TSR, TMGR 등 북방물류의 철도 운송을 병행 활성화하고, 중국·러시아와의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북극항로의 활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한 항로 개척을 넘어 항만별 역할 분담과 전략적 선택이 중요하다. 부산항이 북극항로의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인천항은 컨테이너, 광양항은 철강과 석유화학, 울산항은 액체화물, 평택항은 자동차, 동해항은 광물 등 각 항만의 특성에 맞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이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으로 효율성과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 해운선사의 입장과 구조적 한계
해운선사 입장에서는 북극항로의 운항 시간이 단축되면 오히려 배를 덜 투입하게 되어 선복량 증가 속도에 맞지 않는 수급 불균형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팬데믹 이후 급증한 선박 발주와 세계 경제성장률 둔화, 미국발 관세무역전쟁으로 인한 미국행 화물수송량 감소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북극항로가 단기적으로 해운선사의 수익성에 부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수출입 화주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약 30% 전후의 물류비 절감의 효과를 기대해볼 만하다. 특히 컨테이너 화물의 경우 중간 기항항 여부, 환적 화물수요, 저온 민감화물 운송 등의 이슈로 상업적 매력이 떨어지는 것도 현실이다. 또한 북극해에서 사고 발생 시 구조나 환경오염 대응이 어려워 P&I Club 등 보험 및법적 리스크도 크다.
◇ 전략적 개발과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
북극항로는 단순히 새로운 항로의 개척이 아니라, 국가 해상물류의 대전환을 예고하는 전략적 과제이다.
그리고 북극항로 개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항로의 단순한 개발과 운항이 아니라, 수출입 화물과 환적화물의 창출이다. 단순한 항로 인프라의 신설개척이나 확대만으로는 해운사들의 상업적 운항에 대한 사업추진에 큰 의미가 없으며, 선박이 실어나를 충분한 화물의 확보와 집화 등 수요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은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되, 북극항로 개발에 있어 정치·환경·경제·산업 구조 전반을 고려한 다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해운선사, 항만, 정부, 수출입 화주 간 이해관계 조율을 통해 국가 전체의 물류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