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 세계적인 해운조사기관 알파라이너(Alphaliner)에 따르면 HMM의 선대는 100만7180TEU로 ‘100만 클럽’에 진입했다. 글로벌 순위는 8위로, 수년째 변동 없이 제자리인 상태다. HMM이나 해운 당국이 목표한 글로벌 상위권 해운사가 되기엔 역부족이고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는 셈이다.
HMM은 2018년 2만4000TEU급 12척, 1만6000TEU급 8척 등 총 20척을 국내 조선사에 발주했다. 이후에도 2021년 1만3000TEU급 12척, 2023년 메탄올 추진 9000TEU급 9척을 잇달아 발주하며 선복량을 늘려왔지만, 증가 속도는 글로벌 경쟁사에 크게 뒤처져 있다. 예컨대 대만 에버그린(EVERGREEN)의 선복량은 184만TEU로 HMM의 약 2배에 달하며, 이미 발주된 오더북까지 포함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MSC는 지난 3일 기준 700만2757TEU, 오더북은 200만TEU를 넘는다. 이는 100만TEU를 이제 막 넘긴 HMM의 7배 규모이며, 주문량까지 합산하면 사실상 비교가 어려울 정도의 차이가 난다. MSC는 지난 펜데믹과 엔데믹 기간에 지속적인 신조선과 약 400척 중고선 도입 등 엄청난 선복량 확대를 하면서, 한때 20여 년간 세계 1위였던 경쟁사인 덴마크 머스크(Maersk)와 독일 하팍로이드(Hapag-Lloyd)가 작년 하반기부터 참여한 신규 얼라이언스인 ‘제미나이 협력(Gemini Cooperation)’의 선복량보다도 월등히 많다. 마찬가지로 독일 하팍로이드가 탈퇴하여 축소된 프리미어 얼라이언스 즉 한국 HMM, 일본 ONE(Ocean Network Express), 대만 양밍(Yang Ming)으로 구성된 경쟁 얼라이언스보다도 큰 규모다.
필자가 수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바다가 없는 스위스 MSC가 이토록 선복량을 극대화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2010년대 초 세계 1위 머스크가 초대형선 20척(당시 최대 1만8000TEU급)을 대거 발주하며 시장 지배력을 확보했을 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치킨게임에서 탈락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파산했고, 현대상선은 정부 지원을 통해 가까스로 HMM으로 살아남았다.
선박 중개업체 브레마(Braemar)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건조 중이거나 발주된 컨테이너선은 약 1040척, 총 1090만TEU 규모로 추산되는데, 이는 작년에 비교해 약 7% 증가하였으며 현재 전 세계 컨테이너 총 선대의 33.6%에 해당한다. 특히 최근 주요 선사들은 중소형 컨테이너선 신조 발주가 추세인데 이는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와 미·중 관세전쟁 등 요인과 관계가 있다.
HMM 역시 초대형컨테이너선의 비중이 가장 높아 펜데믹 기간 중 해상물동량의 공급망 붕괴와 지연 등으로 TEU당 매출과 운항원가 절감 측면에서 막대한 이익을 실현할 수 있었다. 다만 최근 SCFI의 계단식 하락 지속과 미국의 관세부과로 인한 차이나커머스 등 미 서안의 해상물동량 감소는 결국 미주항로가 주력인 HMM으로 하여금 중형 컨테이너선의 신조 발주를 하게 만들었다. 해운시황 분석기관 드류리(Drewry)에 따르면 대서양 횡단항로는 수요 둔화·스팟운임 하락·선복 과잉이 겹치며 ‘붕괴 직전’ 수준으로 악화됐다. HMM의 주력 항로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발표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양종서 수석연구원의 ‘해운·조선업 2025년 3분기 동향 및 2026년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3분기까지 컨테이너선 운임은 미국 관세 논쟁거리로 두 차례 상승했으나, 대량의 신조선 인도로 인해 빠른 하락세가 이어졌다. 미국발 무역분쟁과 세계 경제 둔화로 인해 시황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으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홍해 후티 반군 사태가 해소될 경우 수에즈운하 통행이 정상화되면서 동아시아-유럽 노선 시황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네타의 수석분석가 피터샌드에 따르면 홍해 지역의 후티 공격 위협으로 인해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경로로 인해 길어진 항해 거리가 현재 약 200만 TEU의 전 세계 컨테이너 운송 능력을 흡수하고 있으며, 이 선복량이 수에즈운하 통항 재개시 일시에 감소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해운선사들이 그간 운임하락의 방지를 위해 사용해온 블랭크 세일링(임시결항), Low Steaming(감속 운항), 선박수리 휴항, 수에즈운하 통항 중단 및 희망봉 우회, 폐선중단, GRI 운임의 부과 등 온갖 대응책이 이젠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는 것이다. 특히 수에즈운하의 통항이 본격적으로 재개된다면 그간 추가 투입했던 컨테이너 선박들이 남아돌게 되므로 운임하락을 부채질할 것이다. 따라서 동 보고서는 향후 5년간의 심각한 시황 침체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HMM 매각은 필자가 수차례 언론 인터뷰나 칼럼 방송을 통하여 매각이 지연되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미 해운 시황이 침체기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으므로 매각이 더더욱 힘들어지고 나중에 헐값에 매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호황기 실적은 경영 능력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 펜데믹, 전쟁, 수에즈운하에서의 선박좌초, 홍해 사태, 파나마운하 물 부족, 블랭크 세일링, 감속 운항 등 ‘이벤트 기반’ 수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상 시황에서는 불황 국면을 버티기 어렵다.
MSC, MSK, CMA-CGM, COSCO, HAPAG-LLOYD 등 글로벌 TOP5 선사들은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항공·터미널·철도·계약물류·포워딩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HMM은 그러한 사업의 추진 속도가 너무 느리고 투자 실행 규모도 적다. 작년에 발표했던 2030 사업 계획도 실행이 지연되고 시기를 놓침으로써 오히려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해수부의 부산 이전과 HMM 본사의 부산 이전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말했듯이 해당 기관과 기업의 구성원들은 반대 의사가 많다. 그리고 해수부의 경우 다른 부처와의 업무 회의와 협조 등 많은 분야에서 애로가 생길 수밖에 없다.
HMM의 본사 이전 논의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글로벌 해운기업은 업무 특성상 수도권에 본사를 두는 것이 국제 화주·협력사와의 소통에 유리하다. 해외 화주와 글로벌 파트너사는 물론, 국내 해운사·단체·포워더·물류 기업,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수출입 화주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과 회의·조율 업무를 고려하면 부산 본사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더욱이 HMM이 매각돼 다시 민간기업으로 돌아갈 경우, 경영 효율성 때문에 본사를 서울로 재이전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의 이해와 지자체의 헛된 욕망 때문에 기업의 본사 소재지를 마음대로 이전하려는 시도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현재 HMM의 주가는 계단식으로 하락하고 있다. 지난 9월 단행한 자사주 소각 이후 주가가 약세를 보이며 현재 HMM의 시가총액은 19조원대까지 낮아졌고, 인수 희망기업의 협상 여건이 한층 유리해졌다는 소식이다. 물론 매각 타이밍이 지연될 경우 주가가 더욱 떨어져 인수하는 기업으로서 인수자금의 부담이 적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가 하락으로 인한 시가총액 감소에 따라서 제대로 된 기업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넘길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HMM은 지난 3분기 매출이 2조7064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8% 감소했으며,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2968억 원, 3038억 원으로 같은 기간 각각 79.7%, 82.5%로 대폭 급감했다. 이러한 영업실적은 가히 충격적이며 4분기 역시 호전될 가망성이 낮다. 더욱이 내년에는 세계 경제성장률의 둔화와 On-shoring(미국이 제조업 생산시설을 해외에서 국내로 다시 이전하는 자국내 제조생산 방식)으로 전환에 따라, 향후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해상물동량이 증가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지난 3분기 HMM의 수익성이 악화한 건 미국의 보호관세 본격화로 물동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대표 해상운임 지수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3분기 평균 1481p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 급락했다.
따라서 산업은행·해진공의 대주주 체제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20년간 산업은행의 소유하에 있으면서 막대한 국민 혈세를 투입하고 겨우 2조 원에 한화그룹에 매각한 대우조선해양의 전철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한화오션은 민간으로 넘어간 뒤 조선·방산에서 괄목할 성장을 보였다. 만약 산은 체제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HMM은 원래 민간기업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신속한 의사결정·과감한 투자·사업 확장 능력이 뛰어난 민간 대기업이 인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해진공의 위탁관리 체제가 아닌, 글로벌 비즈니스 능력이 탁월한 민간 대기업이 인수해서 글로벌 선사들과의 파멸적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조속한 시일 내 매각을 서둘러야 한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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