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 현재 글로벌 해운시장은 침체기의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3년과 그 이후 엔데믹 2년여 기간까지도 계속 이어졌던 유럽과 중동 전쟁, 홍해 후티 반군 사태로 인한 희망봉 우회 운항 등 해운선사가 선박연료유, 선박보험료와 전쟁할증료 등 추가부담으로 인하여 해상운임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여 글로벌 TOP10 해운선사인 MSC, MSK, CMA-CGM, HAPAG-LLOYD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국적선사인 HMM 역시 적지 않은 영업이익을 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2분기 해상운임의 지속적인 하락에 힘입어 글로벌 선사들의 영업이익은 대략 60% 감소한 실적을 보였으며, 그간 수년간 해운사들이 누렸던 해상운임의 초호황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SCFI(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13주 연속 하락하며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 12일 SCFI는 1398.11p로써 지난달 29일을 제외하고는 13주 연속 하락 중이다. 이는 지난 6월 6일 SCFI 2,240.35p에 비해 무려 37.6%나 급락한 수치이며 이는 향후 컨테이너 해운 시황의 침체를 알리는 시그널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대외적으로는 미국발 관세 리스크가 현실화하여 한국경제를 압박 중이고 해운업은 이미 치킨게임이 진행 중이다. 그러니까 10여년 전 세계 1위의 해운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사가 공언한 대로 파멸적 경쟁(Destructive Competition)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다가오는 위기 국면에 대응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 항만공사 등에서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부산항을 북극항로의 전초기지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 수립되고, 관련 예산도 편성되고 있다. 그러나 북극항로의 상용화는 단순히 해상 운송 거리 단축이라는 장점만으로 접근하기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북극항로는 기존 수에즈운하나 희망봉 경유 항로보다 30~40% 이상 운항거리를 줄일 수 있어 연료비와 인건비 절감 효과가 크다. 최근 러시아 컨테이너선이 사상 최초로 북극항로를 통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중국 항만까지 약 30일 만에 운항을 완료하면서, 그 실현 가능성도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북극항로 운항에는 쇄빙선 지원이 필수적이며, 대부분 러시아 소유의 쇄빙선을 이용해야 한다. 이는 막대한 이용료와 정치적 리스크를 동시에 안긴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 이슈, 미국의 반대, 탱커선의 경우 유가 상한제 등 국제 정치 환경은 북극항로의 전략적 활용에 제약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또한, 북극항로는 모든 화물에 적합한 항로가 아니다. 한국의 수출입 물동량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철광석, 석탄, 곡물, 목재 등 벌크화물은 북극항로와는 동선이 맞지 않는다. 컨테이너 화물 수송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나, 글로벌 해운 시장에서 공 컨테이너 비율이 약 41%에 달하는 현실에서 복귀(match-back: 복화) 화물 확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다. 북극항로 역시 이와 같은 ‘컨테이너 불균형’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안전과 환경 리스크도 크다. 쇄빙 기능이 없는 선박이 해빙에 갇히는 사례가 최근 여러 건 발생했으며, 만약 대형 유류유출이나 선박 침몰 사고가 발생하면 해양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제해사기구(IMO)와 MARPOL 등 국제협약의 철저한 준수가 요구된다. 보험료와 해상운임의 상승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북극항로 운항에 따른 위험 증가로 인해 선박보험(P&I: 선주상호보험조합) 및 전쟁할증료 등이 추가되며, 이는 해운사의 원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글로벌 해운사인 MSC, CMA CGM, 머스크, 하팍로이드 등은 여전히 북극항로에 대해 신중하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내에서는 각 항만과 기관들이 앞다투어 북극항로 전담조직을 신설하며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 부산항만공사, 해운협회, 한국해운조합, 한국선급, 각 지자체 등이 중복된 조직과 예산을 투입하고 있어, 중앙정부 차원의 조율과 역할 분담이 절실하다. 북극항로는 단기 수익사업이 아닌 장기 전략사업으로, 민관 협력과 부처 간 정책 일관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실무자와 업계의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선사, 포워더, 화주기업들은 북극항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지금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 운송 효율성만 강조하다가는 정치·환경·물동량·보험 등 다양한 리스크를 간과할 수 있다.
북극항로는 한국이 동방 기점국으로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 항로다. 하지만 이 기회를 실질적인 경쟁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섣부른 기대로 서두르기보다 철저히 준비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과도한 경쟁보다 협력과 분업을 통한 체계적인 추진이 절실한 때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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