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3조 물류비 절감 노리는 포스코
해운법 24조 ‘대량화물 규제’ 관문
롯데 사례서 드러난 진입 장벽 여전
전문가 “민영화 위해선 제도적 해법 필요”

미국 LA 롱비치항에 정박 중인 HMM 컨테이너선. /사진=HMM
미국 LA 롱비치항에 정박 중인 HMM 컨테이너선. /사진=HMM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연간 수조원의 물류비를 쏟아붓는 포스코가 국적선사 HMM 인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원가 절감과 공급망 안정이라는 실익은 분명하지만, 초대형 화주가 선사를 지배하는 순간 따라붙는 해운업계의 집단 반발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그룹은 최근 삼일PwC,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등과 계약을 맺고 HMM 인수 타당성 검토에 들어갔다. 산업은행(36.02%)과 한국해양진흥공사(35.67%)가 대주주인 HMM은 2023년 매각전이 무산된 뒤 민영화 논의가 재점화된 상황이다. 포스코가 공식 인수전에 나서면 유력 후보로 꼽힐 가능성이 크다.

포스코는 철광석과 원료탄을 연간 수천만 톤 단위로 수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연 3조원 규모의 물류비를 지출한다. HMM을 품으면 원료 수입부터 철강재 수출까지 밸류체인을 통합해 비용 절감과 운송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철강과 이차전지 사업이 동반 부진한 시점에 물류를 그룹의 ‘세 번째 성장축’으로 삼겠다는 포석이다.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향후 성장성과 그룹 차원의 전략적 시너지 가능성을 검토하는 수준”이라며 “인수 여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 번번이 막힌 화주 해운 진출 시도

그러나 해운업계의 반발은 피하기 어려운 숙제다. 포스코는 과거 2009년 대우로지스틱스 인수를 추진했으나 해운업계의 반발 등으로 철회했다. 이어 2020년 그룹 물류업무 통합을 위한 자회사 설립 계획도 해운산업계의 조직적 반대에 부딛힌 바 있다. 

조선·화학·자동차 등 HMM의 기존 고객사는 “운임이 포스코 중심으로 책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벌크선사들의 위기감은 더 크다. 팬오션, 대한해운 등은 포스코 물량 의존도가 높은데, 포스코가 HMM을 거느리면 벌크와 컨테이너 양쪽에서 물량 재배치가 불가피하다. HMM이 사실상 ‘포스코 전용선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는 이유다. 부산항·광양항 등 주요 거점의 선복 조정 문제가 불거질 경우 지역 경제와 정치권 이해관계로까지 파장이 커질 수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 사진=포스코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 사진=포스코

◇ 해운법 24조 7항의 벽

해운업계가 내세우는 제도적 근거도 있다. 해운법 24조 7항은 원유, 제철원료, 액화가스, 석탄 등 ‘대량화물’ 화주가 해운업에 진출할 때 적용된다. 조항에 따르면 이들 화주나 지배 법인이 그 대량화물을 운송하기 위해 해상화물운송사업 등록을 신청하면, 해양수산부 장관은 반드시 정책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등록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초대형 화주가 선사를 직접 소유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시장 왜곡을 제도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롯데그룹의 물류 계열사인 롯데글로벌로지스 사례는 대기업 화주의 해운업 진출이 얼마나 높은 벽에 부딪히는지를 보여준다. 지난 2023년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암모니아 추진선을 도입해 친환경 해상운송 사업을 추진했지만, 해운협회는 암모니아를 액화가스로 해석해 ‘대량화물’로 분류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결국 롯데는 사업 개시 시점을 2027년 이후로 늦췄다. 기업공개(IPO) 과정에서도 ‘해운 진출 리스크’가 부담으로 작용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HMM 인수전에 뛰어들더라도 정책자문위 심의 과정서 해운업계의 거센 반발이 발생할 것”이라며 “여기에 공정위가 운임 차별과 경쟁 제한 가능성을 따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1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HMM 경영권 매각 민영화 대국민 검증 토론회'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정용석 기자
지난해 1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HMM 경영권 매각 민영화 대국민 검증 토론회'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정용석 기자

◇ “책임 있는 화주가 인수해야 부실화 없다”

HMM의 민영화 자체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저가 경쟁과 담합, 투자 부재 등 해운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방치한 채 특정 집단의 기득권만 지키려는 태도가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어 왔다는 지적이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은 “해운인들만 해운사를 인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라며 “글로벌 시장에서는 머스크처럼 선사가 터미널·물류망을 직접 소유하며 공룡화하고 있다. 우리만 해운업계 울타리를 치고 진입을 막는다면 HMM의 민영화 해법은 영영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HMM 같은 공공성이 큰 자산은 포스코처럼 책임 있는 대형 화주가 인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구 회장은 “HMM 같은 공공성이 큰 자산은 포스코 같은 대형 화주가 인수해 공공 지분을 두텁게 두고 운영하면 된다. 책임 있는 화주가 들어와야 부실화를 방지할 수 있다”며 “운임 공정성 같은 부분만 제도화한다면 국가 공급망 차원에서도 더 바람직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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