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조선 협력 1500억 달러·경제 안보 분야 지원 2000억 달러 합의
2주 내 이재명·트럼프 대통령 정상회담서 세부 내용 공개 예정
정치권 ‘대미 투자 규모’ 엇갈린 평가…경제계 “불확실성 해소”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사진=연합뉴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창원 기자] 한국과 미국이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양국 간 무역 협상을 타결했다. 이는 총 3500억 달러(한화 약 487조4800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 카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한 결과다.

특히 1500억 달러(한화 약 208조8750억원)가 투입되는 한미 조선 협력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이번 협상 타결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또한 한국은 핵심 광물 등 경제 안보 분야 지원을 위한 2000억 달러(한화 약 278조5000억원) 규모의 대미 금융 패키지도 제안했다.

한미 무역 협상 한국 측 수석대표였던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0일(현지 시간) 워싱턴 DC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한미 무역 협상 타결 관련 브리핑에서 “오늘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마스가 프로젝트”라며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설, 조선 인력 양성, 조선 관련 공급망 재구축, 선박 건조, 유지보수(MRO) 등을 포괄한다”고 밝혔다.

구 부총리에 따르면, 마스가 프로젝트는 조선업 전반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수요에 기반해 사실상 한국의 사업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 설계·건조 능력을 가진 우리 조선 기업들이 미국 조선업 부흥을 도우며 새로운 기회와 성장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 조선업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미국 내 선박 건조가 최대한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최대한 추진해 줄 것 요청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현지에서 조선소 인수·운영, 공동 사업 등이 가능한 사업자는 한국 기업만 존재하고 있는 만큼 조선 펀드의 직접 수혜자는 미국에 진출하는 한국 조선사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정부는 구체적 단계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협력을 약속했고, 국내 기업의 미국 조선소 투자 등 과정에서 업무협약(MOU) 등을 진행해나간다는 계획이다.

◇ “농축산물 추가적 시장개방 하지 않는다”…2주 내 한미 정상회담 개최

반도체, 원전, 이차전지, 바이오 등 대미 투자 펀드와 관련해서도 한국 기업이 전략적 파트너로서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직접투자의 비중도 매우 낮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펀드는 미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투자하고자 하는 산업에 투자할 재원을 투자(equity), 대출(loans), 보증(credit guarantees)을 통해서 지원해주는 금융 패키지로 앞서 미일 무역 협상에서 일본이 제시한 5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기구(investment vehicle)’와 유사한 개념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직접 투자액 규모는 전체 투자 패키지 금액의 1~2% 불과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관심을 모았던 농축산물 무역 협상 내용과 관련해 양국은 추가적 시장개방은 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와 관련해 구 부총리는 “농축산물에 대한 미국 측의 비관세 장벽 축소와 시장개방 확대 요구가 강하게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도 과채류에 대한 한국의 검역 절차에 대해 문의하며 이에 관심을 표명했다”며 “그러나 우리 협상단의 끈질긴 설명 결과, 미국 측은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추가적인 시장개방은 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비관세 장벽과 관련해 앞으로 검역 절차 개선, 자동차 안전 기준 동등성 인정 상한 폐지 등을 포함해 기술적 사항에 대한 세부적인 협의도 지속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날 합의는 구 부총리,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 방미 협상단 인사들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면담한 것을 계기로 이뤄졌고, 이 자리에는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 등이 배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언급했고, 이에 구체적인 날짜, 방식 등과 관련한 협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한미 정상회담은 2주 내로 성사될 가능성이 높고, 이 자리에서 무역 협상의 세부적인 내용들이 공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우).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우). /사진=연합뉴스

◇ 정부·여당 “실용 외교 통한 ‘값진 성과’”…경제단체·조선·농업계 “환영”

한편, 이번 무역 협상과 관련해 정부·여당은 ‘값진 성과’라는 평가를 내고 있다. 구 부총리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위해 지킬 것은 지켜내면서 감내할 수 있는 수준 안에서 한미 경제 관계가 심화하고, 업그레이드되는 호혜적인 결과를 이뤘다”고 자평했다.

여 본부장은 “대미 통상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봐야할 것 같다”면서도, “이번 성과로 우리 기업의 불확실성이 해소된 측면이 있지만 안심할 것은 아닌 것 같고,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 시장 다변화 등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역시 이재명 정부다.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옳았다”며 “출범 2개월 만에 국민 기대에 값진 성과로 응답해 준 이 대통령과 정부에 감사하다”고 무역 협상 결과를 평가했다.

이어 “이제는 국회가 응답할 시간이다. 민주당은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우리 기업 경쟁력 강화, 수출 시장 다변화 등 산업 혁신을 지원하기 위한 입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우원식 국회의장 또한 자신의 SNS를 통해 “새 정부가 제한된 시간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익을 최우선으로 노력해 타결을 이뤄냈다”며 “많은 분이 우려했던 농업·축산 분야 추가 개방을 막아낸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반면, 야당은 대미 투자 펀드, 농축산물 추가 개방 여부 등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15% 관세율로 합의가 된 점은 일본이나 유럽연합(EU)과 동일한 차원이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협상 시한에 쫓겨서 많은 양보를 했다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에너지 구매 1000억 달러 등 4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와 구매가 필요한 상황인데 우리 외환 보유고보다 많은 액수의 과도한 금액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농축산물에 추가 개방과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에는 농업이 포함돼 있다”며 “쌀·소고기 이외에 다른 곡물이나 과일류에 대한 수입이 대폭 확대되는 것인지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의 단순한 정치적 수사인지 정부에서 명확히 밝혀주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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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평가가 온도차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무역 협상 결과를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선 조선업계에서는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소들이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확대하면서 일감 수주와 실적도 자연히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농업계에서는 쌀·소고기 시장을 추가적으로 개방하지 않는다는 결과에 일단 한숨을 돌리고 있다. 다만, 구체적 품목별 논의 내용 공개 전까지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겠다는 모습이 관측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6개 경제단체는 일제히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논평을 통해 “이번 합의는 수출환경 불확실성 해소는 물론, 우리 기업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주요국과 같거나 더 좋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에 발표된 양국 간 산업 협력 고도화를 위한 펀드는 우리 기업들이 조선,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에너지 등 전략산업 분야에서 미국 및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며 “우리가 강점을 가진 제조 경쟁력과 미국의 혁신역량, 시장을 결합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수출시장을 크게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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