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과거 헤지펀드로부터 경영권 위협
“차등의결권·포이즌필 경영권 방어수단 정책화 도입 필수”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경제계가 이달 열릴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내외 헤지펀드(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을 경계하는 데 비상이다. 헤지펀드는 그동안 주총을 통해 이익확보를 위한 주주환원정책 강화는 물론 이사회 장악, 임원 해임 등 경영권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올해도 몇몇 기업에서 이전과 같은 행태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헤지펀드가 가장 많이 제안한 안건은 주주환원정책 강화(20건)다. 2014년에는 3건에 불과했지만 10년 만에 7배가량 증가한 셈이다. 주주환원 다음으로 많은 안건은 임원해임(14건)과 보수체계 변경(12건), 이사회 장악(11건) 등이다.
재계 1·2위인 삼성·SK도 헤지펀드로부터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방해 받은 바 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2015년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당시 삼성 측은 두 기업의 합병으로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해, 지배구조를 개선하려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평가가 잘못됐다며 합병비율이 타당하지 않다고 반대했다. 이 과정에서 엘리엇은 국민연금에 합병 반대 동참 반대 서한을 보내고 주주들로부터 의결권을 위임 받으려했다. 법원에는 합병 결의안을 의결할 주주총회를 여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합병 과정에 큰 무리가 없다며 소송을 기각했고 같은 해 9월 합병 삼성물산은 출범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국정농단 관련 재판에서 엘리엇의 공세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이 회장은 “엘리엇과 같은 헤지펀드는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방해하고 그들의 이익만 생각한다”며 “삼성의 미래를 고민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이들에 맞서 대항하지 않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 측에 전가된다”고 강조했다.
SK는 헤지펀드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았다. 소버린은 2003년 SK 지분 14.99%를 확보해 최태원 회장 등 경영진의 퇴진을 제안했다. SK의 경영권이 헤지펀드에 넘어갈 수 있던 위기의 순간이 발생한 것이다.
최태원 회장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1조원을 투입해 지분을 추가 확보해 경영권을 지켰다. 이 과정에서 SK의 주가가 상승해 소버린은 2년여 만에 투자금의 5배 수준인 1조원의 차익과 배당을 챙겨 경영권 분쟁에서 물러났다. 결과적으로 헤지펀드가 기업을 방해하고 ‘이익’만 챙긴 것이다.
헤지펀드의 국내 산업계를 겨냥한 주주행동은 올해도 여전한 모양새다. 이들은 일정 수준의 지분을 확보해 주요 주주 지위에 오른 후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수순을 늘 밟아왔다.
국내 대표 헤지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는 최근 코웨이를 상대로 주주제안을 발송했다. 얼라인은 코웨이 주식 209만8136주(2.843%)를 보유 중이다. 얼라인은 “주주환원율이 90%에 육박하던 코웨이가 2019년 넷마블에 인수된 이후 FCF 기준 40%대로 크게 줄었다”며 “예전과 같은 수준으로 환원율을 높이고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등을 주총에서 안건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웨이 관계자는 "대내외 경영 환경을 고려해 주주환원 확대와 지속성장 계획을 담은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으며, 알라인파트너사가 제안한 주주제안은 주총 안건으로 상정했다"고 말했다.
헤지펀드인 머스트자산운용도 영풍에 자사주 소각과 액면분할이나 무상증자 등을 요구 중이다. 지난 10년간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보유 중인 점이 문제라며, 주가상승 및 주주가치 개선을 위해 자사주 소각과 관련된 안건이 주주총회에서 의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웨이·영풍처럼 헤지펀드가 지분을 보유한 다른 기업집단 역시 어떠한 주주제안을 할지 예의주시하며, 과거 사례를 분석해 대비책을 강구 중이다. 매년 계속되는 헤지펀드의 훼방에 더 이상 휘둘릴 수 없다며 지분 추가확보까지 계산하는 곳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성장이나 미래에 관심이 없는 헤지펀드가 우리 경제의 기둥인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와 투자자의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며 “외국처럼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 등의 정책을 도입해 헤지펀드의 공세로부터 기업 경영권을 지킬 제도적 보완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차등의결권은 경영권 방어의 대표적 수단으로 대주주 등이 보유한 주식에 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국내 상법에서는 1주당 1의결권이 원칙이지만, 기업 정관에 따라 의결권을 0.5에서 1000까지 차등 부여하는 것이다. 유럽 300대 상장기업 중 20%가 차등의결권 제도를 실시해 지배주주나 경영진이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포이즌필은 미국과 프랑스, 일본 등에서 활용 중인 제도다. 헤지펀드 등이 주도하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침탈 시도에 대응해 사용하는 방어 전략이다. 특정 투자자의 지분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다른 주주에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신주를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격을 시도한 주체를 견제하는 데 효과적인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