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기 부침 겪은 강관업계, 현지화로 트럼프 2기 대응 완료
그간 수익성 낮아 美 공장 가동률 저조···올해부터 정기 가동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미국이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추진하면서 국내 강관업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기존 쿼터제에서는 국가별로 정해진 물량을 수출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국가별 제한 없이 동일한 관세율을 적용받게 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세아제강, 넥스틸, 휴스틸 등 국내 강관업체들이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13일 한 강관업계 관계자는 “트럼프가 철강 관세를 협상 테이블에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만약 고관세 부과를 결정한다면 현지 추가 투자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 한신평 “강관업계 가장 큰 타격 예상”
한국신용평가는 전날 보고서를 내고 “미국이 기존의 쿼터제를 철폐하고 모든 국가에 동일한 25% 관세를 적용하면 국내 강관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정익수 한신평 연구원은 “지난해 대미 수출액 기준 국내 철강업의 최대 위험 노출 비용은 약 1조2000억원에 달한다”며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강관업체의 수익 기반 악화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미국 수출에서 강관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3.9%로 다른 강종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정용 강관과 송유관의 경우 각각 97.9%, 78.2%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 트럼프 2기, 강관업계에 새로운 기회 될수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한국 강관업계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철강 제조 능력이 떨어지는 상황서 한국산 강관이 고품질 제품으로 인정받으며 수출 확대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내에서 고품질 강관을 제조할 능력이 부족한 만큼 한국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면서 강관업계의 시장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화석연료 생산 확대를 공언하면서, 유정용 강관 및 송유관의 수출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대서양과 태평양, 멕시코만 등 미국 연안에서 신규 원유·가스 개발을 금지한 바이든 정부의 조치를 즉시 뒤집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시추 장비 수요가 증가하면 유정용 강관 및 송유관 수요도 함께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IMARC 리서치 그룹은 글로벌 에너지용 강관 시장 규모가 2023년 245억 달러(약 35조8700억원)에서 2032년 407억 달러(약 57조5800억원)로 연평균 5.7%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 강관업계, 美 생산 확대로 대응
세아제강과 넥스틸, 휴스틸 등 국내 주요 강관업체들은 이미 미국의 수입 규제에 대응해 현지 생산체계를 구축했거나 건설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 1기때부터 시행한 철강 수입 쿼터제(수출 물량 제한 조치)를 피하고자 북미 생산법인을 세운 것이다.
세아제강은 지난 2016년 말부터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 연산 25만톤(t) 규모의 강관 공장을 운영 중이다. 넥스틸도 2022년 하반기부터 연산 12만t 규모의 휴스턴 공장에서 강관을 생산하고 있다.
휴스틸 역시 같은 지역에 연산 7만2000t 규모의 유정용 강관 공장을 건설 중이다. 휴스틸 관계자는 “올해 6월 말 미국 공장 건설이 완료된다“고 했다. 휴스틸은 향후 2단계 증설을 통해 생산능력을 25만t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휴스틸의 2단계 증설이 완료되면 세 업체의 합계 생산능력만 62만t에 달한다. 이는 대미 강관 수출 쿼터인 103만t의 60%에 달한다.
미국 공장의 수익성이 개선되면 이들 공장의 가동률도 개선될 전망이다. 세아제강의 미국 법인 SSUSA(SeAH Steel USA)은 현재 가동률이 50%대에 머물러있지만 본격적으로 국내 강관제품에 관세가 부과되면 공정이 정상화할 것으로 보인다.
넥스틸의 휴스턴 공장도 마찬가지다. 넥스틸 관계자는 “미국 공장의 경우 지난해 비정기적인 가동으로 손익이 마이너스가 났다”면서 “올해부터는 정상적으로 가동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고 했다. 생산 일정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략적인 생산능력 수준은 10~12만t 사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공장은 소구경 강관을 전문적으로 생산한다.
◇ “판매 전략 강화하고 고부가 제품 개발해야“
글로벌 에너지용 강관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과 미국 내 강관 수요 확대는 국내 강관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시장 내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선 전략적인 대응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에도 주요 강관 업체들은 현지 생산을 통해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어느정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현지 생산·판매 전략을 강화해 시장을 확대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하는 등 경쟁력 확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세아제강은 미국 현지 생산 강화 뿐 아니라 국내 생산 제품의 판매처 확대를 추진하는 등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다. 세아제강 관계자는 “미국의 관세 부과와 관련해 세아제강·지주는 미국 생산법인을 유기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라며 “미국 외 글로벌 판로 개척 등 다각도의 대응 방안을 검토해나갈 계획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