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침체에 철근업계 줄감산·출하중단
세아·넥스틸은 수출로 고속회복
‘수요처 다변화’ 여부가 희비 갈라
중소 제강사는 폐업 압박까지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철강업계가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와 저가 수입산 공세로 철근을 중심으로 봉형강(철근·형강) 업계가 감산에 들어간 반면, 강관업계는 가동률을 오히려 높이며 실적 반등을 노리고 있다.
◇ 현대제철 “철근 생산 전면중단”···창사 이래 첫 셧다운
현대제철은 오는 4월 인천공장의 철근 생산을 전면 중단한다. 정기보수가 아닌 시황 악화에 따른 ‘전면 감산’ 조치로, 창사 이후 처음이다. 인천공장은 현대제철의 최대 철근 생산기지로 연간 155만톤(t), 월 13만t 안팎의 철근을 생산해왔다.
전기로 2기와 연계 공정을 모두 멈추는 이번 조치는 철근 수요 절벽에 따른 극약 처방으로 풀이된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철근 시황 악화가 단기간 내에 해소되기 어렵다고 판단해 인천 철근 라인을 셧다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대제철은 전사 희망퇴직 접수에 돌입하며 생산 감축과 조직 슬림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앞서 1월 포항 철근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한 데 이어 이번 인천 셧다운은 철근업계에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감산은 현대제철만의 선택이 아니다. 동국제강은 이달 31일까지 철근 출하를 전면 중단했다. “4월 가격이 톤당 75만원 수준까지 오르지 않으면 출하 금지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한제강, 한국특강, 한국제강, 환영철강 등도 잇따라 유통향 출하를 끊거나 가동률을 50% 이하로 낮췄다. 업계 전반이 “생산하면 손해”인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 철근 마감가는 오르는데···유통가는 하락
봉형강 업계는 생산량은 줄이고 가격은 올리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이달 철근 톤당 마감가격을 72만원으로 책정했고, 4월엔 75만원까지 올릴 계획이다. 동국제강도 유사한 마감 기조를 유지 중이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이번 주 기준 대리점 유통가는 SD400 기준 톤당 68만5000원 수준이다.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70만~75만원을 밑도는 데다 제강사 마감가와 3~4만원 이상 격차가 난다. 주요 제강사 절반은 유통향 출하를 일시 중단했으며, 일부는 아예 철근 영업을 접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셧다운을 사실상 ‘배수진’으로 보고 있다. 유통가격 하락과 유휴재고 부담이 겹치는 가운데 가격 인상 시도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공급 감소량보다 수요 감소량이 크다는 의미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소 제강사 중 일부는 폐업도 고민하는 상황”이라며 “이대로면 내수 기반 철근 생산 인프라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했다.
◇ 강관은 ‘수출 특수’···가동률 고공행진
차갑게 식은 봉형강 업계와 달리 강관업계는 뜨겁다. 세아제강지주는 미국 휴스턴 공장을 24시간 풀가동 중이며, 세아제강은 경북 포항에서 내수 및 수출용 강관 생산을 늘리고 있다.
넥스틸의 미국 휴스턴 공장도 올해부터 정상 가동을 재개한다. 소구경 강관을 전문으로 하는 이 공장은 연간 10만~12만톤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넥스틸 관계자는 “지난해는 비정기적 가동으로 손익이 부진했지만, 올해부터는 정상적인 가동 체제로 전환 중”이라고 밝혔다.
수요처 구조가 양 업계간 희비를 갈랐다는 평가다. 제조 여건과 소재는 같지만 판매처에 따라 실적은 정반대다. 철근은 90% 이상이 국내 건설 현장에 투입되는 구조인 반면 강관은 석유·가스 시추용(OCTG), LNG 송유관, 플랜트용 산업관 등 ‘수출 연계 산업’ 중심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화석연료 회귀’ 기조와 키스톤 파이프라인 재추진 기조에 따라 미국 내 시추관 수요가 늘면서 신뢰성 있는 납품 이력과 사고 이력이 적은 한국산 강관이 직접적 수혜를 받고 있다. 세아제강은 과거 카타르·캐나다 LNG 프로젝트 수주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과 카타르의 LNG 생산능력 확장 시점에 맞춰 추가 수주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향 강관 수출 95만t으로 1위를 차지했다. 2·3위인 캐나다·멕시코에 고율 관세가 적용되면 한국산 강관의 경쟁력은 더욱 부각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나증권 박성봉 연구원은 “캐나다·멕시코 등 경쟁국에 대한 고율 관세가 본격 적용되면, 미국향 수출 1위국인 한국산 강관 점유율은 더욱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며 트럼프의 철강 관세 부과 행정명령이 수출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