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 관련 국내 투자자 미국 주식 보관금액만 6조원 넘어
지난해 말부터 가파른 상승···리게티 26배, 아이온큐 6배 급등
젠슨 황, 상용화 시점 20년 발언에 급락···향후 주가 추이 주목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지난해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던 미국 양자컴퓨터 관련주들이 급락했다. AI(인공지능) 시대에 높은 영향력을 보이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가 양자컴퓨터의 상식적인 상용화 시기를 20년 후로 언급한 탓이었다.
양자컴퓨터의 시대가 곧 도래할 것으로 기대하고 투자에 나섰던 국내 투자자들은 낭패를 보게 됐다. 양자컴퓨터 관련주인 아이온큐(IONQ INC)의 경우 국내 주식 보관금액만 4조5000억원을 넘어선다.
다만 반론도 만만치 않아 향후 주가 흐름이 주목된다. 황 CEO의 발언은 엔비디아의 이익 보호 차원이라며 양자컴퓨터의 상용화는 5년 이내에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 ‘3개월 만에 주가 20배 폭등’···서학개미 몰려간 양자컴퓨터주
양자컴퓨터는 ‘얽힘’이나 ‘중첩’과 같은 양자역학적인 현상을 활용한 컴퓨터를 말한다.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기본 단위인 ‘큐비트’(qubit)는 고전 컴퓨터의 비트처럼 0 또는 1뿐만 아니라 0과 1의 중첩 등 복잡한 상태로 있을 수 있다. 여러 상태를 동시에 표현하고 처리해 슈퍼컴퓨터로도 수백 년이 걸릴 문제를 단 몇 초 만에 해결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 같은 양자컴퓨터의 도래 가능성에 큰 기대를 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IBM, 구글 등 빅테크들은 오래전부터 양자컴퓨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성과도 하나둘씩 나왔던 까닭이다. 특히 구글은 지난달 새로운 양자컴퓨터 칩 ‘윌로우’를 장착한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밝히며 상용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국내 투자자들의 경우 양자컴퓨터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 중소형주에 집중했다. 한국예탁결제원의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이달 7일 기준 아이온큐, 리게티컴퓨팅, 실스크(SEALSQ Corp) 등 미국 양자 관련주의 보관금액은 각각 30억9015만달러, 7억5079만달러, 3억2765만달러다. 이를 합하면 41억6859만달러로 6조원을 넘어선다.
2015년에 설립된 아이온큐는 이온 트랩 기반의 양자컴퓨터를 설계 및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는 회사다. 이온트랩은 상온에서 이용 가능해 상대적으로 오류 발생 가능성이 작고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정부 기관과 대학이 주요 고객이며 아리아(Aria), 포르테(Forte), 포르테 엔터프라이즈(Forte Enterprise) 등 양자 컴퓨팅 시스템을 판매한다.
2013년에 설립된 리게티컴퓨팅은 초전도 회로를 이용해 큐비트를 구현하는 회사다. 초전도 회로 방식은 상대적으로 제어가 용이하고 확장성이 높은 것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리게티는 지난해 말 84큐비트의 ‘앤카-3(Ankaa-3)’시스템을 출시했고 향후 336큐비트인 ‘라이라(Lyra)’ 시스템 출시 계획도 밝힌 바 있다.
양자컴퓨터의 상용화 기대감에 이들 종목의 주가도 급등했다. 리게티컴퓨팅은 지난해 10월 초만 하더라도 주당 0.75달러에 불과했는데 3개월이 지난 이달 2일 20달러까지 폭등했다. 국내 투자자들의 투자 규모가 큰 아이온큐는 3개월 동안 8.17달러에서 51.07달러로 6배 넘게 올랐다. 실스크도 21배나 오르는 모습이 나타났다.
◇ 젠슨 황 한 마디에 ‘털썩’···상용화 시기 논란 속 주가 향방 주목
한없이 잘 나갈 것만 같던 양자컴퓨터 관련주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발언에 크게 흔들렸다.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황 CEO는 전날 엔비디아 애널리스트데이 행사에서 “만약 15년 안에 양자컴퓨터가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아마도 이를 것이고 30년 안이라고 하면 늦은 편이 될 것”이라며 “20년 정도가 우리가 믿을 만한 정도가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머지않은 시기에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했던 투자자들은 이 발언으로 인해 낭패를 보게 됐다. 전날 리게티컴퓨팅은 하루 만에 45.41% 급락했다. 아이온큐와 실스크도 각각 39%, 26.22% 내렸다. 지난해 10월 대비 여전히 높은 주가 수준이지만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3분의 1 안팎이 줄어들 정도로 영향력이 컸던 것이다.
그동안 양자컴퓨터주와 관련해 이른바 거품론이 꾸준히 제기됐다는 점에서 이번 주가 하락이 놀랍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아직 양자컴퓨터의 오류율이 높은 데다 대당 가격이 비싸고 수요처가 한정적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밸류에이션 측면에서도 과대 평가됐다는 주장으로, 대표적으로 아이온큐의 시가총액은 2026년 예상 매출인 1억4500만달러의 45배가 넘는다.
반대로 황 CEO의 전망이 잘못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 금융 서비스회사 DA데이비슨(DA Davidson)의 길 루리아 기술섹터부문 대표는 “황 CEO의 발언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발언”이라며 “양자 컴퓨팅은 이르면 5년 내로 기술 섹터 주류가 될 것이며 이는 엔비디아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양자컴퓨터가 GPU를 활용하는 데이터센터 일부를 대체하게 될 것인데 이는 엔비디아의 실질적인 위협이라는 평가다.
양자컴퓨터의 상용화 시점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가 갈리면서 향후 주가 추이가 주목된다. 아이온큐의 경우 미국 IB인 ‘크레이그 할럼’(Craig Hallum)은 지난해 말 목표 주가를 종전 22달러에서 45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DA데이비슨도 지난해 말 50달러를 제시했다. 미국 투자 업체인 니드햄(Needham)은 아이온큐가 급등하기 시작한 11월에 18달러를 제시한 바 있다. 현재 아이온큐 주가는 30.25달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