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 탓 일 줄어, 권고사직 수순 밟는 중” 토로
급변하는 車 시장 흐름에 부품사 휘청···상생 모색해야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자신을 52세 전기차 장비업체 직원으로 소개한 누리꾼이 ‘눈물겨운’ 사연을 전했다. 그는 최근 다니던 회사에서 나이 때문에 1차 권고 사직 대상에 올랐다. 작년에 초과근무 수당을 더해 월 1000만원을 받을 때도 있었는데, 올해 들어 2분기 글로벌 완성차 고객사가 전기차 생산계획을 축소 조정해 일감이 뚝 떨어졌단다.

그는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수요 둔화) 때문에 회사에 일이 없다”며 “이 나이에 이직하는 게 쉽지 않지만 늦게 결혼해 이제 초등학생인 딸 생각하며 참고 기다려야지”라고 푸념했다. 그가 쓴 글의 댓글엔 다른 누리꾼들이 서로 반말로 소통하는 관행을 깨고 “힘내세요, 잘될 겁니다”라는 등 진심 어린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남 일 같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전쟁, 무역 갈등, 고금리 기조 등 경기 불확실성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발생한 전기차 캐즘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시장 규제에 등 떠밀려 전기차 사업을 밀어붙이던 일부 완성차 업체들은 캐즘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전기차 사업을 재조정했다. 전기차 시장 대응에 늦어 내연기관차 사업 구조에 머물러 있던 부품 업체들은 오히려 최근 내연기관 분야로 회귀하는 시장 흐름에 안도하고 있다.

다만 전기차 시대는 결국 찾아온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전기차 전환이 중장기적으로 이뤄지는 동안 고용 구조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최근 개최한 세계은행 연례회의에 참석해,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이 전기차 전환으로 인해 자본집약도 낮은 분야로 점차 재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본집약도는 노동자 1명의 노동에 투입되는 자본 규모를 나타내는 지표로, 높을수록 노동자 1인당 노동력 부가가치가 높음을 의미한다. IMF 전망을 다시 표현하면, 노동자들이 전기차 전환 흐름 안에서 대체 가능한 단순 업무를 맡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IMF는 앞으로 중국이 대규모 자본을 앞세워 전기차 생산, 수출 측면에서 기존 강국인 미국과 유럽을 계속 앞서면 글로벌 산업 노동 지형이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전기차 공급망과 긴밀하게 얽힌 동시에 미국, 유럽에서 영업 중인 한국도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인 부품 업체들은 그나마 대규모 자본과 연구개발(R&D) 인력을 동원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신수익 창출을 노릴 여력을 갖췄다.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그룹 계열 부품 업체들은 최근 해외 전시회에서 전기차 신기술을 과시하며 적극 영업했다.

급변하는 산업 속 모든 주체가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완성차 업체든, 정부든 시장 변화 흐름 안에서 기울어지는 부품 업체들을 바로 세우고 인력을 재배치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시장을 지탱해 나갈 부품 업체들이 낙오하지 않도록 지원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지난 22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보가 여러 업종 중 자동차 업계 인사를 가장 먼저 만나 시장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은 자동차 산업 내 위기의식이 반영된 행보로 해석된다.

경쟁력 있는 인재와 기업이 수년간 이어질 캐즘의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적극 지원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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