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증권 인수는 1991년, 비자금 어음 발행은 1992년···시점 ‘1년 차이’ 있어 관계 있다고 보기 힘들어
최태원 회장 측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SK 성장에 오히려 손해”
한국이동통신 인수, 노태우 아닌 김영삼 정권 때 완료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상고심이 다음달 시작될 예정이다. 양 측은 다양한 쟁점을 두고 법리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주요 쟁점은 노소영 관장이 최태원 회장과의 결혼생활 중 SK의 성장 과정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여부다. 기여도에 따라 천문학적으로 계산된 재산분할 금액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후광’이나 ‘비자금’이 SK의 성장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판결했다. 노 관장 측 역시 같은 맥락의 주장이었다. 재판부는 노 관장 측의 기여도가 크다고 보고, 최 회장이 1조3808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최 회장 측은 항소심 판결에 즉각 반발했고, 최근 상고심 시작에 앞서 500여쪽에 달하는 상고이유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상고이유서에 따르면 다양한 쟁점 가운데 핵심은 노 관장의 부친인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및 후광 등은 SK그룹의 성장 과정에 오히려 손해가 됐다는 주장이다.
즉, SK가 국내 재계 2위까지 발돋움할 수 있던 배경에 노 관장 측의 큰 도움이 없어 재산분할 금액이 축소돼야 한다는 얘기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한 1991년 메모와 약속어음을 근거로 비자금이 SK 측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봤다. 김 여사의 메모에 ‘선경 300억’이라고 적혀있었고, 선경건설 명의로 50억원으로 6장의 발행 약속어음을 증거로 내세웠다. 또한 이 자금이 당시 태평양증권(現 SK증권) 인수 등에 쓰였다고 판단했다.
반면 최 회장 측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태평양증권을 인수했다는 등의 주장은 사실입증이 어려운 추측에 불과하다는 내용 등을 상고이유서에 담았다.
우선 시기가 맞지 않다고 거듭 강조 중이다. SK의 태평양증권 인수 시기는 1991년 12월인데, 선경건설 명의로 발행된 약속어음의 발행 날짜는 1992년 12월이다. 1년의 차이가 있어 이 자금이 증권사 인수에 쓰였다고 보기 어렵다.
또 손길승 SK 명예회장의 증언 역시 이 어음이 태평양증권 인수와 무관하다는 것에 힘을 싣는다. 그는 300억원 규모의 비자금이 SK가 받은 것이 아닌 노 전 대통령 측에 준 것이라고 밝혔다.
손 명예회장은 언론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측이 매달 생활비 등을 요구해 전달했다고 말했다. 집권 말이 다가오면서 지속적으로 생활비 등을 융통하기 위해 약속어음을 발행해 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음 발행일이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인 1992년 12월인 점도 손 명예회장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SK가 국내 최초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되는 과정에, 당시 대통령인 노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노 관장 측의 주장도 논란거리 중 하나다. 노 관장 측 변호인단은 SK가 청와대 후광을 이용해 경쟁사를 배제시켰다고 주장했고, 항소심 재판부도 이를 일부 인정했다.
그러나 ‘후광’의 당사자인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나와 선경(現 SK)의 관계로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이 정치 문제로 비화돼 결국 사업권을 반납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선경은 다음 정권에 가서야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따르면 SK는 정치 싸움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 SK가 최종적으로 이동통신사업을 영위하게 된 시기는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4년이다.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등이 그룹 성장의 뒷배가 됐다는 법원 및 노소영 관장 측의 주장을 전면 부인한다”며 “노 관장 측의 기여도가 크지 않았다는 것을 상고심에서 입증해 파기환송을 이끌어내 관련 쟁점을 다시 다투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한편 노 관장 측은 2심에서 매우 유리한 판결이 나온 만큼, 재판 전략을 수정하지 않고 결혼생활 동안 SK 성장에 많은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견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