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비서 이씨, 3년여간 30억원 이상 빼돌려···나비 총자산의 5분의 1
이혼소송비 5억원 보내라는 노 관장 사칭 메시지에 곧바로 입금 처리한 재무담당자
속속 확인되는 아트센터 나비의 부실경영 전모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30억원이 넘는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인 아트센터 나비의 전(前) 비서 이모씨(34·여)로 인해 자금 사적 유용 등의 부실경영 행태가 드러나는 모양새다. 공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법인임에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위해 운영됐을 것으로 판단되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서다.
이씨는 지난 2019년 나비에 비서로 입사했다. 같은해 1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노소영 관장 명의의 전자금융거래신청서와 기업신청서 등을 위조해 은행 계좌 및 휴대전화를 개설, 나비 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
노 관장 측은 올해 1월 이씨를 사기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5월 구속기소했고, 재판은 6월 7일 1심 1차 공판을 시작으로 지난달 19일 2차 공판까지 진행된 상태다.
◇ 횡령액 30억원 이상, 나비 총자산은145억원
이씨가 빼돌린 자금은 ▲노소영 관장 개인 통장에서 19억7500만원 ▲신분증 도용을 통한 대출 1억9000만원 ▲노 관장을 사칭해 나비로부터 수령한 공금 5억원 등 약 27억원이다.
여기에 추가로 원고인 노 관장 측 변호인은 이씨가 노 관장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추가로 5억원을 횡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범죄 혐의액은 30억원 이상으로 늘어난다.
이 사건이 재판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원고인 노 관장과 아트센터 나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수십억원이 비서를 통해 횡령되고 있는 것은 물론, 본인 명의로 대출이나 공금이 새나가고 있었는데도 노 관장이 몰랐는지를 두고 관장으로서 법인을 부실하게 경영한 것 아닌지 의구심도 불거지는 중이다.
아트센터 나비의 지난해 기준 총자산은 145억원 규모다. 이 중 5분의 1에 해당하는 약 30억원이 수년간 빼돌려지고 있는데도,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책임자로서 법인 운영에 소홀히 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 문자메시지 1통에 확인 절차 없이 5억원 송금
법인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을 것으로 합리적으로 의심되는 부분도 포착됐다. 이씨가 노소영 관장을 사칭해 지난해 5월 재무담당자 A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5억원을 받아낸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비서 이씨는 A씨에게 이혼 소송 비용으로 돈이 없으니 상여금 명목으로 현금 5억원을 개인(노소영 관장) 통장으로 보내달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A씨는 이씨가 관리하는 노 관장 명의의 통장에 5억원을 즉각 송금한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재무담당자인 A씨가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5억원이라는 큰 돈을 노 관장 개인 계좌로 입금했다는 점이다. 그는 노 관장의 평소 말투로 메시지가 와서 이체 과정에서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이 수차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전과 비슷한 지시를 A씨가 받은 적이 있어 이씨의 거짓 지시를 따른 것으로 유추 가능하다. 공익법인인 나비의 자금을 노 관장이 사적으로 유용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트센터 나비와 같이 공익법인은 국가보조금이나 기부금 등으로 운영된다. 자금의 쓰임새에 관해 교통비 등과 같은 사소한 것이라도 공시 자료에 기입해야 한다. 이혼 소송비로 5억원을 활용하겠다고 이체하라는 지시를 재무담당자인 A씨는 거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A씨는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돈을 보냈다.
자금뿐만 아니다. 전 비서 이씨는 노 관장의 인감 도장은 물론 신분증 등도 가지고 있어 법인이 아닌 개인 업무로 함께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관장 노소영이 아닌 일반인 노소영의 사적 업무도 함께 담당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한편, 이씨에 대한 3차 공판은 이달 30일 열릴 예정이다. 공판 과정에서 그의 범죄 혐의액이 늘어나면서 아트센터 나비의 부실경영 정황이나 노소영 관장의 자금 사적 유용 의혹 등이 더욱 커질 공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