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에 ‘아트센터 나비’ 쫓겨날 처지
‘전대차 계약만료’ 판단에도 “이혼 갈등이 배경” 해석
경영권 갈등에 ‘34년’ 한국타이어 공익법인도 흔들

서울 종로 서린동 SK 사옥. / 사진=SK그룹
서울 종로 서린동 SK 사옥. / 사진=SK그룹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교육·복지 등 공익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대기업집단에 속한 공익법인이 내부 갈등에 부침을 겪고 있다. 사회 전반의 이익을 목적으로 삼는 독립된 법인의 활동이 후원인의 사적 감정에 활동을 위축받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SK이노베이션이 아트센터 나비를 상대로 낸 부동산 인도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SK그룹 본사가 있는 서린빌딩에서 아트센터 나비가 퇴거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아트센터 나비가 SK이노베이션과 체결한 전대차 계약에 따라 목적물을 점유했는데, 2019년 9월 이 계약이 끝났다며 부동산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번 부동산 소송의 배경을 단순 전대차 계약만료에만 따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SK이노베이션이 아트센터 나비 측에 퇴거를 요구한 시점인 2019년 3월은 최태원 회장이 노소영 관장을 상대로 이혼 조정을 신청한 직후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3월 노 관장이 최 회장의 동거인이자 내연녀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3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부동산 소송이 제기(2023년 4월)된 점도 눈에 띈다.

노소영씨가 관장을 맡고 있는 아트센터 나비의 전신은 최 회장의 모친 고(故) 박계희 여사가 운영하던 ‘워커힐 미술관’이다. 박 여사 사망 이후 노씨가 관장직을 맡았고 2000년 워커힐 미술관이 아트센터 나비로 명칭을 바꿨다. 아트센터 나비는 2000년부터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서린빌딩을 전차해 사용했으며, SK그룹으로부터 운영자금을 지원받았다. 아트센터 나비는 독립된 법인격을 가진 법인이지만, SK그룹이 그 뿌리인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존립이 흔들리는 아트센터 나비와 달리 김희영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티앤씨재단은 규모가 커졌다. 청소년을 위한 장학·학술 지원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티앤씨재단은 2018년 1월 최 회장과 김 이사장이 함께 설립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이 계속 중이던 시점이다.

이혼 항소심 법원에 따르면 최 회장 측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티앤씨재단에 출연한 기부금은 133억원에 달한다. 티앤씨재단이 받은 기부액 156억원 중 80%이상이 최 회장 측으로부터 나온 셈이다. 다만 법원은 133억원 전액이 최 회장의 개인 자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약 50억여원만 재산분할대상액으로 판단했을 뿐이다.

법원도 두 비영리법인의 부침이 최 회장과 노 관장 사이 갈등과 무관치 않다고 봤다. 이혼 항소심 법원은 최 회장이 노 관장과 혼인 관계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 관장이 최 회장 모친으로부터 승계한 아트센터 나비 관장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티앤씨재단에서는 상당한 규모의 돈을 출연해 노 관장의 정신적 고통이 컸을 것이라며 거액의 위자료를 산정하는 배경 중 하나로 삼았다.

대기업집단이 운영하는 비영리법인이 내부 갈등으로 풍파를 겪는 사례는 또 있다. 한국앤컴퍼니(옛 한국타이어)의 공익법인 ‘한국타이어나눔재단’도 최근 불거진 경영권 갈등에 법인의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한국타이어나눔재단은 한국타이어 설립 50주년이던 1990년 기업 활동을 통해 창출된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공익적 목적에서 시작됐다. 아동·청소년 지원, 지역사회 지원 등 지난해까지 누적 440억원(재단 자체 평가)의 공익활동을 펼쳐왔다. 조양래 명예회장의 장녀 조희경씨가 이사장으로 있다.

그러나 2남 조현범 회장이 회장에 오른 이후 한국타이어의 지원이 중단됐다. 최근엔 재단 이름에 ‘한국타이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는 소송까지 제기된 상태다. 브랜드 가치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는 게 한국타이어의 공식 입장이지만, 조현범 회장과 조희경 이사장 간 경영권 갈등이 그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나눔재단 관계자는 “수많은 임직원과 이해관계자들이 몸담고 있는 법인격임에도 불구하고 ‘사적 감정’으로 인해 사업비가 갑작스럽게 중단됐다”며 “한국타이어 명칭 삭제 요구 역시 재단 협력기관과 수혜자분들에게 민망한 일로 유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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