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손해 감수하고 '밀어내기'···철강업계 "불공정 무역행위 근절해야"
中 후판 t당 70만원 선···국산보다 10~20만원 저렴해
무역 보복 등 셈법 복잡···포스코 "결정한 바 없어"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철강업계가 중국의 저가 후판 밀어내기로 피해를 입자 현대제철이 정부에 반덤핑 제소를 하고 나섰지만 포스코와 동국제강은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철강업계 전반적으로 반덤핑 제소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중국과의 역학관계를 고려해 쉽게 움직이지 못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4일 정부와 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최근 중국 업체들의 저가 후판 수출로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산업통상자원부에 반덤핑 제소를 했다. 후판은 두께 6㎜ 이상의 철판으로, 주로 선박용으로 사용된다.
그간 철강업계는 “중국의 ‘밀어내기’식 수출 탓해 막대한 피해를 입어왔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산 후판 수입 가격은 t당 70만원 선이다. 국내 후판 유통가격 대비 10만~20만원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저가 철강재를 수출해왔다. 부동산 침체와 일자리 불안정에 따라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예상치를 크게 밑돌자 생산한 철강재가 남아돌게 된 탓이다. 주요 선진국과 중남미 조차도 중국산 저가 철강재에 관세 부과를 추진하자 눈을 돌리게 된 곳이 한국과 동남아 등이다.
국내에서 후판을 생산하는 기업은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3곳이지만 이번 제소는 현대제철만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를 비롯해 동국제강은 저가 중국산 철강재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반덤핑 제소에 동참하는 의사를 밝히길 주저하는 모양새다.
포스코 관계자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도 “반덤핑 제소와 관련해선 결정한 바 없다”고 했다. 앞서 포스코홀딩스는 올해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정부가 덤핑 조사에 나선다면 포스코의 전략이나 상황에 맞게 답변 자료를 제출하겠다”며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업계선 현대제철이 저가 중국산 철강재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제소에 앞장선 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제철의 경우 전체 매출액 대비 후판 매출은 15% 가량이다. 포스코는 후판 매출 비중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전체 조강 생산량 대비 후판 생산량 비율이 15.7%인 점을 고려하면 현대제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국내 철강사들이 중국과의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선뜻 나서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대차·현대엔지니어링 등 그룹 내 든든한 수요처를 확보한 현대제철과 달리 포스코와 동국제강은 중국과 갈등을 빚을 수 있는 반덤핑 제소에 앞장서서 참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유럽연햡(EU)의 대(對) 중국 관세 조치에 대응해 반덤핑 조사를 실시하는 등 ‘무역 보복’ 조치 강도를 강화하는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업계 모두가 중국산 저가 후판에 대한 제재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자칫 중국과 무역 갈등에 앞장서는 모양새를 만들 수 있어 반덤핑 제소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철강업계는 정부의 칼끝만 바라보고 있다. 반덤핑 조사신청을 접수한 산업부는 아직 조사개시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산업부는 약 두 달 동안 검토를 거친 뒤 조사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검토 과정서 후판 제조사의 50%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포스코 혹은 동국제강이 찬성 의사를 밝힌다면 조사는 차질 없이 실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부의 조사개시가 이뤄지면 3개월간 예비조사가 이뤄지고 무역위원회에서 예비판정을 내린다. 본조사에선 중국 업체들이 후판을 한국에 더 싸게 팔았다는 증거, 피해액 등을 구체적으로 규명해야 한다. 이같은 절차적 허들이 존재해 최종 반덤핑 관세 부과 결정까지는 길게는 1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종 반덤핑 관세 부과 결정까지 꽤 긴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업체별 대응방안 마련도 숙제로 남는다. 후판을 비롯해 열연, 강관 제품까지도 최근 중국산 제품이 국내로 밀려 들어오면서 수익성 확보도 더 어려워졌다. 현대제철을 비롯해 포스코는 고부가제품 개발을 통해 신규 수요를 창출하겠단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