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철강재 대량 공급, 韓 후판 가격 하락 부추겨
조선 빅3, 파업 전운···“납기일 늦어지면 국내 업계 신뢰도 하락 우려”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조선업계가 연이은 수주 잭팟에 힘입어 10여년 만에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 이 가운데 선박 제조원가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후판 가격이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어 실적 및 수익성 상승세의 발판도 마련된 모습이다. 단, 회사 측과 노동조합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파업’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 빠른 해결이 슈퍼사이클 지속의 마지막 남은 과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조선 및 철강사들의 후판 가격 협상은 최근 이견을 좁히면서 지난해 하반기보다 인하될 것으로 보인다. 양 측은 서로의 입장을 고수하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하지만 조선업계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저가공세를 펴고 있는 중국산 후판 사용량을 늘리겠다는 으름장에, 철강사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후판 가격을 내리기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중국의 내수부진에 현지 철강재의 국내 수입량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증가한 후판 공급량에 현대중공업도 중국산 철강재의 투입 비중을 기존 20%에서 25% 이상으로 늘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철강사와의 후판 가격 협상에서도 중국산 제품의 수입량 증가가 큰 영향을 미쳤다”며 “시장에 후판 공급량이 늘어나 국내 철강사들이 가격하락 압박을 받고 있어 하향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용 후판은 두께 6mm 이상의 두꺼운 철판으로 선박 건조에 주로 쓰인다. 선박 제조원가의 약 20%를 차지해, 후판 가격이 오르면 조선사의 수익성은 낮아지게 된다. 반면 철강업계는 상대적으로 많은 이익을 얻는 구조다.
양 측의 후판 가격협상은 매년 상·하반기에 걸쳐 진행된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1톤(t)당 100만원, 하반기에는 90만원 중반대에서 각각 합의가 이뤄졌다. 올해 상반기의 경우 이보다 더 내려간 90만원 초반대에 타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후판 가격까지 내릴 것으로 보이면서, 조선업계에는 많은 일감과 함께 ‘탄탄대로’가 열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매년 여름 찾아오는 ‘노사갈등’에 조선소에 큰 긴장감이 돌고 있다.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이달 22~24일 진행한 조합원 투표를 통해 파업안을 가결했다.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타결을 위해 10여차례 노사 교섭이 진행됐지만, 타협안을 찾지 못해서다.
중앙노동위원회가 노사 이견이 크다고 판단해 쟁의조정 중지 판단을 하면, 노조는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하다. 현대중공업의 여름휴가는 이달 27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로, 실제 파업은 8월 중순부터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도 마찬가지다. 한화오션은 지난 15일 하루동안 파업한 바 있다. 추가 파업도 가능한 상황이다. 삼성중공업도 지난 22일 조합원 투표를 통해 파업을 가결해 국내 조선 빅3의 동반 파업이 나타날 공산도 크다.
현재 각 조선소 도크에서 건조 중인 선박 외에도 3~4년치 일감을 소화해야하는 상황에서 파업 실시로 하루라도 계획 일정이 미뤄지는 것은 큰 타격이다. 납기일을 준수하지 못해 매일 발생하는 지연금 납부만 문제가 아니다. 국내 조선업계의 일감 수주 과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분야는 기술 경쟁력뿐만 아니라 확실한 납기일 준수도 있다”며 “노사갈등 장기화에 파업 기간이 길어진다면 납기일 준수가 어려워져 발주사로부터 신뢰도를 잃을 수 있다. 빠른 갈등 봉합 만이 십여년 만에 찾아온 슈퍼사이클 장기화의 필수조건”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