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형' 현대차 빠지자 동력 잃은 파업
조선업계, 일부 간부 참여 그쳐
"임단협 진행 탓에 총파업 동참 여력 없어"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파업을 강행한 가운데 금속노조의 총파업까지 겹치면서 국내 산업계에 하투(夏鬪·노동계 여름투쟁)가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일각에선 금속노조가 이번 총파업을 통해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통과를 요구함과 동시에 산하 대기업 사업장인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의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약)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번 총파업이 생산 차질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본사 정규직 조합원의 파업 참여율이 저조한 데다 사내하청 인력이 많은 조선소의 특성상 조업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노조는 눈 앞에 닥친 임단협 타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10일 금속노조 측에 따르면 금속노조 울산지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울산시청 앞에서 집회를 진행 중이다. 노조는 노란봉투법 통과 및 타임오프제 폐지를 기치로 내걸고 산하 사업장에 이날 주야 각 4시간, 총 8시간의 파업 지침을 내렸다.
다만 금속노조가 참여를 기대했던 대형 사업장이 이탈하면서 총파업 개시일을 전후로 금속노조의 대오가 뭉치기는커녕 오히려 무너지는 모양새다.
이날 파업에는 당초 10만5000여명이 참여할 계획이었지만 지난 8일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노사 교섭에서 잠정합의를 이루면서 최종 규모는 6만여명 선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완성차 부품업체 노조들이 금속노조 총파업에 동참했지만, 완성차 업체들의 연쇄 파업은 피하게 됐다.
조선업계 사업장도 총파업 여파를 빗겨나갈 전망이다. 파업 시작 전부터 ‘불법 정치 파업’이라는 논란이 인데다 조합원 전원이 참석할만한 명분도 부족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HD현대중공업을 비롯해 한화오션도 일부 노조 간부 몇명이 총파업에 참여하는 수준이다.
이에 대해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총파업 동력은 투쟁 목적에 개별 사업장이 동의해야 하는데, ‘노란봉투법 입법’을 지원하는 전위부대 역할보다는 개별 사업장에서 발생한 노사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며 “각 사업장마다 임단협을 한창 진행 중이라 총파업에 힘을 싣을 여력도 없다”고 했다.
한동안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노조는 한창 진행 중인 임단협 타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HD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달 4일 임단협 상견례를 시작으로 이달 2일까지 8차례 교섭을 진행했다. 한화오션은 한화그룹으로 인수합병(M&A)된 이후 처음으로 임단협을 치른다.
다만 두 회사 모두 아직 별다른 성과는 없는 상태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를 압박하기 위해 파업 준비에 들어갔다.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15만9800원 인상, 성과급 산출기준 변경, 정년 연장 등을 요구했으나 노사 간 큰 이견을 보이고 있어서다. 이외에도 승진거부권, 조선 3사 공동교섭 등을 주장하며 노사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노조는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한다. 중앙노동위원회가 노사간 입장차를 인정해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고,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과반 이상이 찬성하면 노조는 파업권을 확보하게 된다.
한화오션 노사도 RSU(양도제한조건부 주식) 지급 방식을 두고 견해차가 크다. 노조는 지난해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 당시 약속했던 RSU 300% 지급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지만, 사측은 성과에 연동되는 성과급 개념이라 무조건 지급을 약속하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양사는 임단협 교섭 난항이 파업으로까지 이어지는 것만은 피하고자 늦어도 7월 말부터 시작하는 여름휴가 전까진 제시안을 들고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화오션은 RSU 지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 협의체를 마련해 노사 간 논의를 진행 중이다.
금속노조 총파업이 두 회사 임단협에 미칠 영향도 제한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각 사업장의 노조가 정치적 성격이 강한 파업에 거리를 두는 경향이 뚜렷해졌고, 금속노조의 중앙 단위 지침이나 지휘가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게 다수 조선업계 종사자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년 만에 찾아온 조선업계 호황 국면이 브레이크가 걸리면 안 된다는 노사 간 공통된 우려가 깔린 만큼 올해도 추석 전에는 임단협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지난해에도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 모두 추석 전 임단협 타결에 성공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