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마진 1분기 12.6달러→2분기 4.5달러···중국·인도 생산량에 급락
정부, 물가안정 무기로 가격인상 막아···“물가안정만 외치며 정유사 나몰라라”

에쓰오일 울산 생산라인 모습. / 사진=에쓰오일
에쓰오일 울산 생산라인 모습. / 사진=에쓰오일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정유업계가 수익을 좌우하는 정제마진의 급락에 실적이 악화일로다. 여름 휴가 성수기의 도래로 하반기 들어 석유제품 수익성이 어느 정도 회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정부가 기름값 인상을 자제하라고 압박해, 수요 증가로 인한 실적 개선에 제동이 걸리면서 하반기도 깜깜한 상황이다.

22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4.5달러 수준이다. 1분기 12.6달러 대비 64.3% 급락했다. 정제마진은 석유 제품 가격에서 원료인 원유와 수송·운영비 등의 비용을 뺀 것이다. 일반적으로 4~5달러 수준을 손익분기점으로 보는데, 지금 정제마진으로는 공장 및 생산라인 운영을 통해 이익을 내기 힘든 구조다.

지난해 2분기 정제마진은 0.9달러로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들은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충돌로 중동 정세가 악화되면서, 원유 공급량이 수요 대비 크게 줄어들면서 지난해 3분기부터 정제마진은 반등하기 시작했다. 이 때 정제마진은 7.5달러 수준이다.

이어 같은해 4분기에는 4.1달러로 낮아졌다가 올해 1분기 들어 크게 상승했다. 러시아-우즈베키스탄 전쟁 장기화에 러시아산 원유를 유럽 등에서 수입하지 않으면서 글로벌 원유 수급에 불균형이 나타나서다.

올해 1분기부터 정제마진이 급등하면서 정유사들은 누적된 손해를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SK이노베이션은 1분기 정유 부문에서 586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지난해 4분기보다 7560억원 증가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에쓰오일도 454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흑자로 돌아섰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하지만 2분기 들어 석유제품 수요가 둔화하면서 정제마진이 급감해 실적상승 지속이란 기대감은 무너지게 됐다. 중국 및 인도 등이 러시아산 원유률 저렴한 가격에 구입·정제해 글로벌 시장에 대량으로 공급하면서 정제마진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대신증권은 SK이노베이션 정유 부문의 예상 영업이익으로 760억원을 제시했다. 위정원 연구원은 “정유 부문 예상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87.1% 하락할 전망”이라며 “중국 등의 성유 제품 수출물량 증가로 판매량 및 마진 약세가 심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유가상승도 실적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대외협력실장은 “올해 1분기보다 2분기 들어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석유제품 수요가 둔화되기 시작했다”며 “정유업계의 2분기 경영실적은 1분기보다 악화될 것으로 우려한다”고 전했다.

정제마진 둔화로 실적악화라는 어려움에 직면한 정유업계에 대해 정부는 물가안정을 외치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7~8월은 휴가철 성수기로 석유제품 수요가 크게 증가하는 시기다. 수요가 급증하는 만큼 제품 판매가격도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정부는 정유 4사 대표를 한 자리에 모아 가격 인상을 자제하고 기름값 안정화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업계 내부에서는 정부에 반발이 큰 상황이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정부는 실적이 좋을 때는 횡재세로, 좋지 않을 때는 판매가격을 올리지 말라고 압박한다”며 “정유사들을 ‘봉’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업계 차원에서 단결된 마땅한 입장을 내놓을 수도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유사가 정부 압박과 달리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인상이라는 스탠스를 보인다면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라며 “이번에도 울며 겨자먹기로 정부 측을 따를 수밖에 없다. 물가안정을 무기로 정유사 상황은 나몰라라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유업계는 정부의 압박으로 가격 인상의 자유를 잃어, 하반기 실적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정제마진 하락이 계속되는 가운데, 늘어나는 수요에도 가격을 올릴 수 없어서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생산량이라도 타이트하게 조절해, 재고 발생비용을 줄이는 등으로 위기를 넘기겠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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