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엔진·엔진부품 1위 사업자 지위 공고···수주 경쟁력↑
공정위, 엔진 핵심 부품 '크랭크샤프트' 두고 경쟁제한 우려
HD현대, STX중공업 지원 사격···설비 증설 검토 등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올해 STX중공업 인수 작업을 마무리하면 친환경 엔진 공급력 확대와 그룹 조선사업과 시너지 극대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겠다.”
지난 3월 권오갑 HD현대 회장이 제7회 정기 주주총회에서 밝힌 포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HD한국조선해양이 STX중공업을 인수하는 기업결합 신고에 대해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리면서 양사 시너지 극대화 전략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선박 엔진 부품과 선박 엔진 시장의 1·3위 기업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1위 사업자 지위 역시 공고해졌다는 평가다.
◇ 견고해진 ‘글로벌 1위‘ 엔진메이커 입지
15일 공정위는 HD한국조선해양과 STX중공업의 주식 35.05%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다. 이로써 HD한국조선해양은 선박용 엔진을 생산하는 STX중공업과 엔진 부품인 ‘크랭크샤프트’를 제조하는 자회사 한국해양크랭크샤프트(KMCS)를 품에 안게 됐다.
앞서 HD현대조선해양은 STX중공업 최대주주 파인트리파트너스와 STX중공업 인수를 놓고 치열한 협상을 벌여왔다. 인수가격에 대한 의견 차이 및 한화그룹과의 경쟁 등으로 인해 한때 협상 중단 등의 위기를 겪었으나, 지난해 7월 말 극적으로 인수 본계약을 체결하면서 고비를 넘겼다.
양사 결합으로 HD한국조선해양의 선박용 엔진 시장 점유율은 70%대로 올라섰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HD현대중공업(약 35%·1위)과 3위 STX중공업(약 5%·3위)을 합쳐 약 40%로 올라섰다. 엔진 부품 시장선 국내 시장의 약 80%를 차지하게 됐다.
엔진과 엔진 부품 시장서 1위 사업자 자리를 공고히 하면서 조선업계 내 HD한국조선해양 영향력이 더욱 극대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엔진 부품부터 선박까지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 구조를 통해 수주 경쟁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엔진 부품-엔진-선박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가 이뤄지면 생산 일정 공유 등을 통해 선박 건조에 대한 효율성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 강화로 친환경 엔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선주들은 배를 주문할 때 엔진에 대한 기술력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엔진 기술 내재화를 이룬 기업이 수주 경쟁에서 유리한 상황”이라고 했다.
◇ “경쟁사에 부품 공급 거절하면 안 돼”···공정위, ‘조건부 승인‘ 결정
공정위는 HD현대중공업과 STX중공업 간 엔진사업 결합, 각 사 엔진사업부와 HD한국조선해양 간 수직계열화에 대한 경쟁제한 우려는 낮다고 평가했다. 결합회사가 선주들을 대상으로 엔진 가격을 일방적으로 인상하기 어렵고, 한화엔진(옛 HSD엔진)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어 가격 인상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공정위는 선박용 엔진의 핵심 부품인 크랭크샤프트의 경우 경쟁제한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현재 국내에서 크랭크샤프트를 만드는 회사는 HD현대중공업과 STX중공업의 자회사 KMCS, 두산그룹 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 등 3곳이다.
KMCS는 STX중공업에 필요한 크랭크샤프트를 전량 공급하며 일부를 외부에 판매한다. 한화엔진의 크랭크샤프트 주요 공급처는 두산에너빌리티와 KMCS인데, 두산에너빌리티 공장은 이미 가동률 100%에 달해 유일한 대체공급선은 KMCS 뿐이다.
만약 이번 결합으로 KMCS가 한화엔진에 납품을 거절한다면 한화엔진은 생산 차질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한화엔진의 생산량이 줄어들면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과 STX중공업이 직·간접적인 이익을 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이에 공정위는 양사 기업결합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내걸었다. 한화엔진이 안정적으로 크랭크샤프트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 ▲크랭크샤프트의 공급 거절 금지 ▲최소물량보장 ▲가격 인상 제한 ▲납기 지연금지 등이 공정위가 내건 기업결합 조건이다.
◇ 영업망 확대·R&D 예산 증대·생산 실적 개선 기대감
HD한국조선해양이 STX중공업을 품에 안게 되면서 얻을 대표적 시너지 효과는 ‘포트폴리오 다변화’다. 계열사 HD현대중공업은 대형 엔진에 강점을 지닌 반면 STX중공업은 중소형 엔진 쪽이 전문이다.
실제 HD한국조선해양은 STX중공업이 보유한 엔진 기술력을 확보할 경우 경쟁력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STX중공업은 세계 최초로 LPG 이중연료엔진(LGIP)을 개발해 시운전에 성공했고, 국내에서는 처음 LNG 운반선에 들어가는 이중연료 소형 엔진을 국산화한 경험이 있다.
양사 영업망 확대도 노려볼 수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STX중공업의 중국 영업망을 활용할 수 있다. STX중공업은 주요 고객사로 중국 시아멘시앙유 등 중국 업체를 두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중국향 매출은 전체 매출의 30%가 넘는다. 이외에도 케이조선, 대선조선 등 국내 중견 조선소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 중이다.
특히 다소 빈약하다고 평가됐던 STX중공업의 연구개발(R&D) 예산도 대폭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기업결합으로 HD현대그룹 차원의 자금 지원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현재 STX중공업 R&D 담당 조직인 기술연구소 인력은 7명에 불과하다. 올해 1분기 기준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 2.0%로 작년 말(5.4%) 대비 줄어든 형편이다.
HD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HD현대중공업이 보유한 엔진 기술을 접목해 증가하는 친환경 엔진 수요에 대응하고 그룹 내 조선 사업과의 시너지를 통해 STX중공업의 경쟁력 강화를 모색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STX중공업은 HD현대중공업과 시너지를 통해 기존 주요 고객사인 중형조선소를 넘어 대형조선소를 통한 매출 확대를 노린다. HD현대중공업이 보유한 기술 역량과의 결합으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STX중공업 측은 지난 1분기 사업보고서를 통해 “친환경 선박 시장에 대응해 대형조선소에 납품하는 친환경 엔진 점유율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저조했던 STX중공업의 생산실적도 개선될 전망이다. STX중공업의 선박엔진 제조를 담당하는 경남 창원 1공장의 올해 1분기 평균 가동률은 34%다. 친환경 엔진 시장이 호황기를 맞으면서 공장 가동률의 상승 여지는 충분하다는 게 업계 평가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올해 들어 조선업체들의 상선수주는 LPG/암모니아 운반선으로 몰리고 있다”면서 “LPG 추진엔진 제조에 두각을 드러내는 STX중공업의 수주 후보군이 두터워지는 중”이라고 했다.
노후 설비 교체도 이뤄질 전망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STX중공업에 대한 설비 증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