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 1회 충전 주행거리 292㎞ 인증···푸조 동급車 부진에 부담
“전세계 6위 전기차 시장 韓서 더 출시 늦출 수 없어”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지프가 국내 첫 전기차(BEV)로 소형차를 선택했지만 앞서 가족 브랜드 푸조가 동종 모델을 출시한 후 고전하고 있어 흥행 여부에 의문부호가 붙는다.
25일 한국에너지공단 수송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지프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어벤저(Avenger)’의 1회 충전 주행거리는 292㎞로 인증됐다.
어벤저는 지프 브랜드를 국내 운영하는 스텔란티스 코리아가 연내 출시 추진 중인 전기차다. 지프가 1992년 한국 진출 후 선보이는 전기차로서 상징성을 갖춘 차량이라는 평가다.
5인승 전륜구동(FF) 모델인 어벤저는 최고출력 156마력, 최대토크 27.5㎏·m의 힘을 발휘한다. 58㎾h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했고 1㎾h당 5.0㎞의 전비(연비, 복합 기준)를 달성해 에너지소비효율등급 2등급을 획득했다.
스텔란티스 영국법인 홈페이지에 기재된 어벤저의 규격은 전장 4080㎜, 전폭 1760㎜, 전고 1530㎜다. 국산차 중 현대자동차 소형 SUV 베뉴와 동등한 수준이다. 각종 주행 모드를 지원하고 경사로 저속주행(힐 디센트 컨트롤) 기능을 갖춰 험로(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지프의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유커넥트(Uconnect)를 비롯해 자율 비상제동, 사각지대 감지, 자율주행 레벨2 운전보조,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 사양이 탑재됐다. 어벤저는 영국에서 최저 2만3859유로(약 3547만원, 론지튜드 트림)에 판매되고 있다. 스텔란티스 코리아는 보조금 제도 운영 기간 등을 고려해 연내 적절한 시점에 어벤저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내 출시 모델의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 푸조 e208·e2008은 부진···지프 위상 약화도 부담 요인
어벤저가 지프의 첫 전기차라는 상징성과 함께 최신 사양을 갖췄지만, 경쟁이 치열한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각인시킬지 미지수라는 전망이다. 전기차 주행거리에 대한 국내 잠재고객의 ‘심리적 마지노선’ 400㎞에 한참 못 미칠 뿐 아니라, 최근 지프의 브랜드 위상이 약화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수입 전기차 중 당국 인증에 따른 1회 최장 주행거리(상온 기준)가 300㎞ 미만인 수입 전기차는 푸조의 e-208(277㎞), e-2008(265㎞) 2종이다. 푸조는 지프와 같은 스텔란티스 산하 브랜드다. 푸조 전기차 2종은 짧은 주행거리 뿐 아니라 크기, 디자인 등 측면에서 고객 니즈를 충족하지 못했고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48대, 51대 판매되는데 그쳤다.
어벤저는 e-208과 같은 eCMP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어 주행성능 등 일부 측면에서 동등한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플랫폼은 푸조의 기존 내연기관차 플랫폼을 전기차 설계에 맞춰 개조하는 방식으로 개발됐다. 스텔란티스가 전기차 개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펼치고 있는 전략이다. 다만 푸조가 국내에서 두 전기차로 저조한 실적을 이어가는 점은 어벤저 출시를 앞둔 지프에 부담을 지우는 요소라는 관측이다.
또 같은 기간 지프가 한국에서 전년(1612대) 대비 23.6% 감소한 1232대를 기록하며 1만대를 거뜬히 넘기던 과거 입지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달까지 수개월째 대형 SUV 그랜드 체로키 등 기존 출시한 차량 중 일부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1000만원 넘게 할인 판매하는 실정이다.
향후 출시될 어벤저가 브랜드 전략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특단의 마케팅 전략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자동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어벤저가 작은 차인데다 요즘 전기차 시장 분위기가 너무 침체됐기 때문에, 가격이 흥행 관건이 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프는 수개월 후 출시 예정인 신규 전기차로 새롭게 주목받는 상황이다. 지프는 오는 9월과 내년 이후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준대형 전기 SUV 왜고니어S, 전기 오프로더 레콘 EV을 각각 출시할 계획이다. 신차 제원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2030년 전기차 75종 이상 출시를 목표로 둔 지프의 초기 출시 제품으로서 경쟁력 있는 상품성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 본사, 전기차 확산에 박차···세계 6위 시장 韓 공략 서둘러
스텔란티스 코리아가 두 중형급 이상 신규 전기차 대신 어벤저를 최초 전기차로 점찍은 것은 “더 이상 출시를 미뤄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스텔란티스 코리아는 앞서 지난해 하반기 출시를 염두에 두고 어벤저의 국내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지난해 소형차 수요가 큰 유럽에서 4만대 이상 계약되는 등 호응을 얻어 현지에 물량이 쏠린데다, 국내 전기차 수요가 둔화한 업황 속에서 출시를 연기했다. 그새 메르세데스-벤츠, BMW를 비롯한 주요 수입차 업체들이 다양한 차급의 전기차를 출시해 주도권을 가져갔다. 배기가스 배출량이 비교적 많은 고배기량 엔진, 오프로더 차량으로 잘 알려진 지프가 친환경차 대세 속에서 초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스텔란티스 본사가 현재 전개 중인 글로벌 전기차 전략에 따라 국내 어벤저 출시를 서두른다는 분석이다. 현재 스텔란티스는 이윤 개선을 목표로 글로벌 사업의 효율 제고를 적극 지향하고 있다.
이 일환으로 전기차 사업에서 어벤저 같이 내연기관차 플랫폼을 공유하는 파생 모델의 라인업 비중을 60%까지 높여 비용절감과 수익 확대를 노리고 있다. 또 이 같은 전략을 바탕으로 매년 고부가 제품인 전기차, 하이브리드차의 판매 비중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성과를 지속 확대해 재무 기반을 탄탄히 다지는 한편, 전기차 전용 플랫폼 STLA 기반의 신규 전기차를 꾸준히 출시해 브랜드 전동화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
스텔란티스 코리아는 해외 출시된 전기차를 한국에도 전략적으로 선별해 출시하며 시장 입지를 넓힐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6위 규모의 전기차 시장으로서 지프가 적극 공략해야 할 사업장이기도 하다.
스텔란티스 코리아 관계자는 “어벤저 마케팅 전략을 현재 발전시켜나가고 있지만 젊은 1인가구, 세컨드카 등 다양한 수요를 공략하려고 한다”며 “지프가 전동화에 늦었다는 시장 반응이 있는 상황에서 어벤저는 국내 첫 브랜드 전기차로서 (브랜드 전략적) 측면을 지닌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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