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의사 82명 등 119명 입건과 9명 송치 밝혀···남은 수사 대상자는 의사 77명 등 97명
업계, 고려제약 리베이트 관련 ‘뉴로셉트’ 주목···영맨 “처방 변화 조짐”, 2400억원대 규모
의료대란과 리베이트 수사로 의사와 골프·식사 쉽지 않아···만나기도 어려워 영업 고충 증가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제약업계와 의료계가 최근 정부의 리베이트 수사 움직임에 긴장하고 있다. 이미 입건된 관계자가 100명을 넘은 가운데 의료대란까지 겹치며 제약사들은 의사 만나기가 어렵다고 호소한다. 과거 친분이 있던 의사들과 진행한 골프나 식사는 아예 엄두 내기 힘들어진 상황으로 알려졌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지방경찰청의 고려제약 수사가 리베이트 수수 의혹이 있는 1000여명 의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예고된다. 이미 경찰은 2000만원 이상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의사 14명과 고려제약 관계자 8명 등 총 22명을 의료법 및 약사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 바 있다.
또 보건복지부가 의뢰한 19건과 자체 첩보로 인지한 13건 등 전국에서 총 32건 리베이트를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의료계 리베이트로 입건한 사람은) 119명이고 이 중 의사가 82명, 나머지는 제약사 관계자”라고 밝혔다. 이어 우 본부장은 “일부 수사를 마쳐 의사 4명과 제약사 관계자 5명 등 9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13명은 불송치했다”며 “현재 남은 수사 대상자는 의사 77명을 비롯, 97명”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32건은 내사 단계를 포함한 것으로 분석된다. 복지부가 19건 수사를 의뢰한 시점은 지난달 말이기 때문에 제보 내용을 분석하고 타당성을 파악한 후 본격 수사나 압수수색으로 연결하려면 일정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정당국 동향에 정통한 제약업계 관계자 A씨는 “이미 알려진 고려제약 사건과 노원구 대형병원 사건을 제외하더라도 경찰이 전국에서 의료계 리베이트를 32건 수사하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수치”라며 “이중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사건은 조만간 압수수색이나 본격 수사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경찰의 리베이트 수사 여파는 업계 곳곳에서 파악된다. 우선 경찰이 의사 1000명 수사 가능성을 언급한 고려제약 사건의 경우 관련 의약품이 CNS(중추신경계)일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치매치료제 중 하나인 ‘뉴로셉트’(성분명 도네페질) 품목이 포함됐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뉴로셉트는 지난해 고려제약 CNS 제품 중 최대 매출을 기록한 품목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 도네페질 성분 시장은 2400억원대 규모로 추산된다.
익명을 요청한 제약사 직원 B씨는 “최근 경찰로부터 1000명이 흘러나오자 대한의사협회까지 이를 언급한 것은 의료계도 주목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벌써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 처방 변화 조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제약업계 관계자 C씨는 “최근 몇 년간 치매 치료제 처방시장에서 도네페질 성분 의약품은 꾸준한 매출 증대가 진행됐다”며 “도네페질 시장에서 고려제약과 경쟁해왔던 3-4개 업체가 현재 표정 관리에 신경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제약사 직원들과 의사들 골프도 감소하는 경향으로 파악된다. 약계와 의료계에서 골프가 대중화된지 오래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라운딩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골프를 같이 치는 사례가 줄었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지난 2022년 1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경동제약 골프 리베이트를 적발한 데 이어 고려제약 사건에서도 접대골프가 거론됐다. 제약업계 관계자 D씨는 “제약사 영업사원과 의사 친밀도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가 골프를 같이 치느냐와 식사를 같이 하느냐인데 2022년경부터 의사와 골프 약속이 감소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의사와 같이 골프 치거나 식사하는 영업사원들은 유능력자에 포함된다. 상당수 제약사 영업사원들은 대형병원 의사를 만나 디테일 영업하는 것이 힘들어진 상황으로 알려졌다. 의료대란 와중에서 대형병원은 물론 준종합병원이나 세미병원급 의료기관에서도 의사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토로다. 제약업계 관계자 E씨는 “의약품 처방에 영향력을 미치는 의사를 병원에서 대기하다가 얼굴 한번 보면 그날 운이 좋은 것”이라며 “최근 의사 대상 영업이 위축됐는데 리베이트 수사 여파까지 추가되면 더 힘들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이 진행하는 리베이트 수사 결과가 주목되는 가운데 당분간 의사 대상 영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같은 흐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