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교실 있지만 시간 맞지 않고 양질의 교육 어려워"
"여성 역할, 시대변화 속도 따라가지 못해"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출산율은 0.66명까지 감소했다. 이대로 가면 2750년에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다시 우렁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100명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되살릴 방법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저출산 문제는 한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홍콩 0.77명(2021년 기준), 대만 0.87명(2022년), 싱가포르 0.97명(2023년) 등 동아시아 주요국의 합계 출산율도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는다.

각 국가별 자구책에도 출산율은 여전히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 일시적인 현금 지원책보다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폐쇄적인 유교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에 관한 도덕적 엄숙주의 ▲성 역할 구분으로 한쪽 성에 집중되는 육아 부담 ▲사회적 성취를 중시하는 입신양명 문화 등이 저출생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여러 구조적 모순들이 한꺼번에 꼬여 있는 상황인 만큼 단순히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해 실타래를 풀어내기는 어렵다.

출산 후 복직해 7년째 재직중인 배나현씨(34, 여)는 여성의 대학진학률과 사회 참여율이 급증했지만 집안 내 여성의 역할은 과거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남편이 도와준다고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 사진=시사저널e
출산 후 복직해 7년째 재직중인 배나현씨(34, 여)는 여성의 대학진학률과 사회 참여율이 급증했지만 집안 내 여성의 역할은 과거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남편이 도와준다고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 사진=시사저널e

아이와 금전적 지원을 맞바꾸는 편안한 포퓰리즘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실제 저출산 문제 뒤에 가려진 구조적 문제는 외면하고 있단 지적이다. 

현재 중견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배나현(34·여) 씨는 출산으로 10여년 전에 육아휴직을 하고 이후 복직한 워킹맘(일하는 엄마)이다.

초등학생 외동딸을 키우는 배 씨는 집안일과 돌봄에 있어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여전하며 우리 사회가 이를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적으로 해결할려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교육을 통해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Q. 맞벌이를 하며 현재 딸을 키우고 있는데 가장 큰 육아 부담이 어떤 것인가

"돌봄 공백이 가장 큰 부담이다.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만 해도 종일반까지 하면 오후 5시쯤 하원하기 때문에 오히려 편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오후 1~2시쯤 일찍 하교한다. 그 이후 시간은 학원으로 돌리지만 중간에 시간이 비거나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경우 조부모님 도움이 필수다. "

Q.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것이 있나

"학교 내에 보육과 교육의 기능을 갖춘 '초등돌봄교실'(돌봄교실)이란 프로그램도 있지만 기존에 다니던 학원을 보내려면 시간이 맞지 않고 양질의 교육이 이뤄진다고 보기 어려워 신청하지 않았다. 방과후교실도 있는데 인기가 많은 과목은 금방 마감되거나 학원 시간과 맞지 않아 이용하지 않는다."

Q. 사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교육이 무너진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 국어도 수학도 부족하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학원을 보내 선행학습을 시킬 이유가 없다."

Q. 둘째를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하는가

"남편은 둘째를 원했지만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포기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내 일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첫째를 낳고 지내다 보니 돈이 부족했다. 대기업 다니는 남편의 소득은 높은 편이지만 집을 사면서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편 월급에 맞춰서 살 수 있었지만 경제력을 갖고 싶었다. 4년제 대학을 나와 직장생활도 하면서 경력을 쌓았는데 한 순간에 집안에서 애만 보고 있으니 인생이 허무하기도 하고 우울감도 생겼다. 그래서 애 하나 더 낳는 것을 포기하고 내 커리어를 쌓아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첫째를 낳고 4년 뒤부터 일을 다시 시작했는데 자존감도 올라가고 오히려 육아와 집안일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남편의 육아 참여도가 낮았던 것도 둘째 출산을 하지 않게 된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다. 첫째를 낳고 정신적, 신체적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냈지만 남편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둘째를 낳으면 나만 더 고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를 낳고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둘째를 낳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여성의 대학진학률과 사회 참여율이 급증했지만 집안 내 여성의 역할은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여성들은 집안 일도 소홀하면 안되고 엄마로서 교육에도 전적으로 신경써야 하고 회사에서도 뒤쳐지면 안된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해결돼야 한다."

Q.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가

"어렵다. 엄마와 아빠가 둘 다 일할 경우 밥은 누가 하고 청소는 누가 하나? 요즘은 문화가 많이 바껴서 남편들도 가사 일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보통 저녁에 퇴근하기 때문에 가사 일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 집안일이라는 게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집안일은 해도 티가 안나지만 안하면 바로 티가 난다. 집안 청소가 끝이 아니다. 아이 먹일 것도 해야한다. 요즘에는 성조숙증 문제도 크기 때문에 대충 먹일 수 없다. 먹거리도 꼼꼼히 신경 써야 한다.

실제 하루 일과를 보면 오전 6시반~7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면서 출근 준비까지 같이 한다. 그리고 8시 반에 아이 등원과 함께 나도 출근한다. 엄마가 9 to 6 근무자라면 아침밥을 차려주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거다. 6시에 퇴근해서 집에 오면 7시. 집에 오자마자 저녁밥을 차려서 먹이고 씻기고 숙제까지 봐주면 10시다. 애가 잠들면 집안 정리, 온라인 장보기, 내일 준비물 챙기기 등을 해야한다.

남편도 어느 정도 집안일을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집안 일 자체는 아내의 몫으로 본인이 잘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에 너무 몰두하면 애한테 소홀하게 되고, 애한테 몰두하면 일에 지장이 갈 수 있기 때문에 페이스 조절을 잘 해야한다. 슈퍼맘, 워킹맘, 슈퍼우먼이란 말이 생긴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는 집안일과 직장 일을 모두 잘하는 여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들이다. 결국 엄마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너무 많고 기대 수준도 높다."

Q. 복직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가

"복직할 때 부모님 도움을 받았다. 지방에 사시는 부모님이 집 근처로 이사까지 왔다. 당시 유치원생이던 딸 아이의 등하원을 맡아주셨다. 특히 이때는 아이들이 감기를 달고 사는 시기라 아이가 열나고 아프면 부모님이 돌봐주셨다. 부모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에서는 다행히 배려를 많이 해줬다. 그럼에도 아이가 어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워 힘들었다. 엄마가 일을 하면 아무래도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고 할머니가 봐주심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정서적인 문제가 생길까 늘 노심초사했다. 그 과정을 잘 버텨서 지금까지 경력을 유지하고 있다."

Q. 국가에 바라고 싶은 점이 있다면

"임신을 하면 나라에서 예비 부모들을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임신·육아 관련 교육을 해줬으면 좋겠다. 신혼부부들은 육아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다. 특히 최근에는 아이의 정서 발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컸던 시절을 생각하고 키우기엔 무리가 있다. 특히 남성의 역할 분담(집안일, 육아, 교육 등)에 대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등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남성 육아휴직이 왜 필요한 지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여성이 지닌 육아, 돌봄의 무게를 줄이라는 의미에서 남성에게도 육아휴직 기회를 주는 것이다. 결국 여성들의 육아 부담을 줄이지 않으면 결혼 기피와 저출산 같은 사회적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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