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보정심과 의사인력委 회의록 제출 예정···의료계는 탄원서 제출하며 증원 불가 주장
서울고법 제7행정부 각하 시 정부는 내년 의대 증원 확정···대교협, 이달 말까지 확정 예정
서울고법, 집행정지 인용하면 내년 의대 정원 확대 불발···수험생과 학부모 혼란 예상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한 법원 판결이 조만간 예정돼있어 주목된다. 정부와 의료계가 증원 근거 자료와 탄원서 제출 등을 진행하는 가운데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하면 내년 의대 증원이 확정될 전망이다. 반면 법원이 집행정지로 결론 내면 내년 의대 증원이 불발될 가능성이 예고된다.
8일 의료계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등 18명이 지난달 8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2025학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배분 결정에 대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 2심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앞서 진행된 집행정지 신청 1심에서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각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각하란 소송이 요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청구 내용이 판단 대상이 아닐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을 지칭한다.
지난달 30일 심문기일을 진행한 이번 2심에서 재판부가 정부에 의대 2000명 증원에 대한 근거를 요청한 것이 증원 정책의 변수로 부상했다. 1심에서 각하 결정이 나왔고 의대생과 교수, 전공의 등이 정부를 상대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배분 결정 효력을 멈춰달라며 법원에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이 대부분 각하된 상황에서 서울고법의 근거 요청은 의외였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청한 법조계 관계자 A씨는 “특수 사례를 제외하곤 정부 행정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라며 “특히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각하 사례가 대부분이었는데 재판부가 정부에 자료 제출을 요청한 것도 흔치 않은 사례”라고 말했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7부는 구체적으로 2025학년 의대 정원이 법령상 어떤 절차를 거쳐 언제 최종 확정되는지, 증원 규모 2000명은 어떻게 도출했는지와 관련한 회의 자료가 있는지, 증원된 의대에 인적·물적 시설 조사를 한 것인지 등에 대한 근거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복지부는 의대 2000명 증원을 최종 결정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록과 보정심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 회의록 등 근거 자료를 서울고법에 제출하겠다는 입장이다. 보정심은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보건의료에 관한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위원회다. 공공기록물관리법 상 회의록 작성 의무가 있는 회의체다.
복지부는 오는 10일까지 관련 자료 제출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법원의 자료 요청에 대한 불만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의대 증원은 정부의 고유한 정책 영역인데 법원이 이를 결정할 권한이 있느냐는 지적이다. 삼권분립이 규정된 민주국가에서 행정부 역할에 대해 사법부가 관여할 근거와 명분이 약하다는 논리로 요약된다. 만약 집행정지 인용 판결이 나올 경우 수험생과 학부모, 국민들이 받게 될 충격과 혼란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토로도 있다.
일부 시민단체도 법원의 정책 결정 참여에 대해 우려 입장을 표명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이날 논평에서 “(법원이) 정부에 자료 제출을 요청한 건 사법부가 절차와 법리 정당성을 판단하는 수준을 넘은 과도한 행정부 통제”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수반되는 행정 행위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사법부가 행정부의 정책적 판단을 통제하는 건 우리 헌법이 보장한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의료계는 복지부의 자료 제출을 앞두고 탄원서 제출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실제 신창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을 비롯, 전국 39개 의대 학장은 전날 서울고법 제7행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탄원서를 통해 2025학년 의대 정원을 한꺼번에 2000명 늘리면 의학교육 질이 저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증원된 학생 수를 감당하려면 교수 대규모 증원과 시설 및 기자재에 대한 대규모 투자, 증설이 필요하고 교수를 증원하려면 최소 2년 이상 소요되는데 기초의학 교수의 경우 전국에 배출된 인력이 희귀한 상태로 채용할 수 있는 인재풀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도 이날 전국 의대생 1만 3645명 이름으로 서울고법 제7행정부에 탄원서를 냈다. 의대협은 기존 증원 2000명을 최근 1500명으로 조율한 것도 과학적 근거가 없음을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의대협은 “정부는 처방과 치료 근거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증원분을 1500명으로 조율했다. 처방에 있어 어떻게 타협을 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의대협은 “과학적 근거와 실질적 의료시스템 개선 방안 없이 추진되는 정책의 비논리성을 신중히 검토해주시라”면서 “이번 정부의 증원 정책은 의학 교육 특수성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청한 의료계 관계자 B씨는 “정부가 당초 의대 2000명 증원을 결정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을 재판부가 판단하면 집행정지 인용 가능성도 있다”며 기대감을 표명했다.
이처럼 복지부와 의료계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서울고법 행정7부는 복지부가 제출하는 자료를 검토한 후 이달 중순까지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판결을 내릴 전망이다. 만약 유사한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과 이번 1심처럼 각하 결정이 나올 경우 정부는 2025년 의대 정원을 확정할 태세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이달 말까지 각 의대의 내년 모집 인원을 포함한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승인해 각 대학에 통보할 방침이다. 의료계가 집단 휴진에 이어 총파업을 강행할 가능성도 전망되지만 법원 판결 이후 보름 남짓 기간이 남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의대 정원 확정 가능성이 예고된다.
반면 서울고법 행정7부가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할 경우 2025년 의대 정원 확대가 불발될 전망이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절차 진행이 정지되기 때문에 각 의대는 당분간 기존 모집 인원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 처하면 조규홍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할 가능성도 예상된다. 의료계 관계자 C씨는 “정부 정책 행위에 대해 사법부가 판단한다는 것은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이를 초래한 책임도 있다”며 “서울고법 행정7부 결정 내용이 궁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