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택 “증원 백지화해야 협상 가능”···정부 “조건 없이 대화” 촉구, 법률 검토 병행
2025년 의대 정원, 내달 말까지 확정 예정···전공의도 내달 복귀해야 1년 유급 면해
의대 교수 사직, 한 달 동안 점진적 여파 예상···정부는 군의관과 공보의 추가 파견 대응
주요병원 주 1회 휴진도 환자에게 부담···서울대와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은 내일 휴진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의정갈등 장기화로 인해 5월 대란설이 부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다음 달 2025년 의대 정원이 확정되고 이탈 전공의의 전문의 취득 1년 지연도 확정될 가능성이 예고된다. 여기에 의대 교수 사직과 휴진이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환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29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 중심의 의료계는 의대 정원을 확대할 경우 정부와 협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은 전날 열린 의협 제76차 정기 대의원총회에 참석, “정부가 우선적으로 2000명 의대 증원 발표,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백지화한 다음에야 의료계는 원점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다”며 “그렇지 않고서 의료계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협상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2025년 의대 모집 정원을 증원분의 50∼100%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2000명 증원’에서 양보했지만 의료계는 기존 입장을 강조하는 상황이다. 지난 25일 출범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도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참석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청한 의료계 관계자 A씨는 “동일한 의미이긴 하지만 그동안 의협 입장이 원점 재검토였던 것에 비해 임 회장이 (의대 증원) 백지화를 내세운 것은 강경한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라며 “의대 정원을 한 명도 늘리면 안 된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 회의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복지부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 회의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복지부

이에 정부는 의료계에 대화를 촉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전공의 대화 전제조건이 (정부 정책의) ‘원점 재검토’인데 이는 정부가 받을 수 없는 조건”이라며 “조건을 내걸지 말고 정부와 대화 자리에 나와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가 의료계에 지속적으로 대화를 제의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강경한 대응책도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지난 26일 브리핑에서 의대 교수 사직과 관련, “(교수) 집단행동이 관계 법령을 위반하는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의대 교수 사직은 국가공무원법과 의료법 위반, 형법상 업무방해죄 등에 해당한다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의협도 차기 집행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2명이던 변호사 출신 법제이사를 4명으로 늘리는 등 법적 쟁점에 대해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으로 파악된다.

그동안 진행되던 의정갈등이 대화로 전환되기는 커녕 오히려 5월에 들어서면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우선 전공의 이탈을 촉발시킨 2025년 의대 정원의 경우 이달 30일까지 각 의대가 자율적으로 결정한 정원 수치 등을 교육부에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오는 5월 말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의대를 포함한 내년 대학 입학 정원을 심의해 의결하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이같은 절차가 완료되면 의대 정원을 다시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각 대학 여건상 교육부에 의대 정원을 제출하는 절차가 하루나 이틀 정도 늦춰지더라도 5월 말 의결은 예정대로 진행할 전망이다. 6월 이후로 연기될 경우 수험생과 학부모 혼란과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의료계 관계자 B씨는 “학교들이 의대 정원 수치를 제출하면 정부가 이를 취합해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며 “5월 말 확정 이전 의정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29일 전북 익산 원광대학교병원 대강당에서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제출한 사직서를 한곳에 모아 의대 학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9일 전북 익산 원광대학교병원 대강당에서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제출한 사직서를 한곳에 모아 의대 학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와 함께 의료현장을 이탈한 상태인 전공의들은 5월 중순 이후에는 복귀 가능성이 극히 낮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전공의는 한 달 이상 수련 공백이 발생하면 추가 수련을 받아야 한다. 추가 수련을 받아야 하는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할 경우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지연된다.

이에 지난 2월 20일을 전후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은 오는 5월 20일을 전후로 한 시점까지 복귀하지 않을 경우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지연될 수 있다. 5월 하순이 되면 의료 현장에 복귀할 전공의는 사실상 거의 없게 된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의료계 관계자 C씨는 “(5월 중순 이후에는) 어차피 복귀해 근무해도 전문의 취득 시기가 지연되는데 낮은 연봉에 육체적으로 힘든 전공의 생활을 하기 위해 돌아오는 전공의는 극소수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부담스러운 것은 의대 교수 사직과 집단 휴직이다. 우선 현재로선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시기와 각자 담당 환자 사정으로 인해 실제 사직이 진행되는 날짜가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사직 여파도 단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교수 사직이 사실상 5월 1일부터 한 달 여 기간 동안 점진적으로 진행되며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사직서를 제출한 의대 교수들이 800여명 규모나 1200여명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사직 규모는 향후 점진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 당선인이 28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의협 제76차 정기대의원 총회에 참석해 당선인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 당선인이 28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의협 제76차 정기대의원 총회에 참석해 당선인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의료계 관계자 D씨는 “교수들끼리 사직 예정일을 통일할 수 없어 개별적으로 진행된다”며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조사에도 나왔지만 체력적 한계에 이른 것이 사직 이유”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전의교협이 지난 12일부터 전국 대학병원 임상 여교수 434명에게 사직 의사 등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 근무할 수 있는 한계에 조만간 도달할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전체의 92.4%에 달했다. 

이처럼 향후 의대 교수 사직 여파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공보의) 추가 파견을 결정했다. 이날 브리핑에서 박 차관은 “의대 교수 사직에 따라 군의관과 공보의 추가 투입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들이 교수를 대체하기 쉽지 않겠지만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지난 22일 기준 군의관과 공보의 396명이 의료기관 63곳에서 지원 근무를 하고 있다. 정부는 군의관 수요를 이날까지, 공보의 수요를 30일까지 조사해 추가 파견한다는 방침이다.

‘빅5’ 등 전국 주요병원의 주 1회 휴진도 환자들에게 불안을 주는 요소로 꼽힌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은 오는 30일,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5월 3일을 휴진일로 결정했다. 삼성서울병원 교수들의 경우 개별적으로 하루를 골라 휴무하기로 했다. 환자단체 관계자 E씨는 “사직이나 휴진 형태로 의대 교수들이 자리를 비우면 환자 고통은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며 “환자를 위해 교수들은 신속하게 진료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5월 1일 공식 출범하는 임현택 의협 회장 체제는 정부와 힘겨루기를 할 가능성이 높아 5월 대란설을 부채질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의협에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돼 활동을 진행했지만 최근 해산, 임현택 체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의료계 내 강경파로 꼽히는 임 회장은 정부와 대화에 앞서 복수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어 실제 대화가 개시될지 의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 F씨는 “만약 5월 말 내년 의대 정원이 확정될 때까지 정부와 의료계가 사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전공의 복귀 자체가 불발되는 등 상황은 최악이 될 수 있다”며 “양측이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해야 환자 희생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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