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 마련 의무 위반, 제재 근거되기 어려워
7월부터 책무구조도 시행···CEO 제재 가능해져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판매사에 대한 제재 절차가 시작된 가운데 징계 범위가 판매사 최고경영자(CEO)까지 이르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에 당국이 판매사 CEO를 대상으로 제재를 내릴 때 근거로 삼은 내부통제 기준 마련 미흡은 더 이상 법원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 7월부터 모든 금융사에 ‘책무구조도’가 도입되는 만큼, 향후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CEO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홍콩 H지수 기초 ELS의 대규모 손실 발생과 관련 검사를 마친 5개 은행과 6개 증권사 등 11개 판매사에 검사의견서를 보냈다. 각 판매사가 2∼3주 이내에 검사의견서에 대한 답변서를 보내면 당국은 법률검토와 제재 수준을 결정 한다.
이후 이르면 내달 제재심의위원회 일정을 잡은 뒤를 제재 사전 통보한다. 최종 제재안은 금융위원회를 거쳐 결정된다.
업계에선 이번 ELS 사태의 제재에 CEO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홍콩 ELS의 대부분을 판매한 은행들이 손실배상 절차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는 제재 수준의 경감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구나 사모펀드 사태 이후 금융사들이 내부통제기준을 고도화해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지난 2018년 금융회사지배구조법 도입 이후 CEO에게 제재를 가할 때 제시한 주된 근거가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의 위반이다. 하지만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은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 때 법원에서 재재의 근거로 인정받지 못했다.
2022년 말 대법원은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DLF 손실 사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중징계를 취소해달라고 낸 행정소송에서 손 회장의 최종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금융당국이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가 아닌 '준수할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금융사나 임직원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본 것이다. 마찬가지로 DLF 사태 관련 징계로 당국에 소송을 낸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비슷한 이유로 2심에서 승소했다.
다만 각 금융사가 책무구조도를 도입할 예정인 만큼, 향후엔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CEO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임원 개개인이 책임지는 내부 통제 대상 업무의 범위와 내용을 스스로 각자의 특성을 고려해 사전에 명확히 하는 것이다. ELS 사태가 발생하자 금융당국이 이 방안을 추진했다. 올해 7월부터 각 금융사에 공식 도입된다.
책무구조도가 도입되면 금융당국 제재 시 제재대상이 ‘행위자-감독자’ 체계에서 ‘행위자-책임자’로 변경된다. 기존에는 책임을 금융사고를 실제로 일으킨 행위자의 바로 위 감독자가 졌다면, 이제 담당 임원, 내지 CEO에게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책무구조도는 특히 결재체계와 관계가 돼 있다"라면서 "특정 시점에 문제가 된 금융투자상품을 대거 판매한 사실을 CEO에게 보고했지만 CEO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 CEO 책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