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직접 타격은 없을 듯
美 제재 심화에 따라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 필요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중국을 대상으로 한 미국 상무부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규제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올 3분기 실적 화두로 떠올랐다. 내주부터 실적 발표 설명회가 예정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관련 질문이 쏟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20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정부의 대중 반도체 수출 추가 제재로 인한 글로벌 주요 기업들에 미칠 영향을 두고 시장의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발표한 이번 추가 제재는 기존에 원칙적으로 수출을 금지했던 고성능 AI 반도체 외에도 이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저사양 제품까지 중국에 판매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수출통제 조치의 우회를 막기 위해 규제를 강화했다고 미국 상무부는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이미 AI용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 금지를 발표한 바 있지만, 그간 엔비디아는 해당 규제 기준을 밑도는 성능의 AI 반도체를 중국 시장에 판매해왔다. 최신 제품인 H100 및 A100 그래픽처리장치(GPU) 대비 10~30% 정도 성능이 낮은 H800과 A800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에 AI 반도체를 판매하지 못하게 될 시 이들 칩의 파운드리 물량을 수주하는 TSMC, 반도체 장비사 ASML 등 기업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날 TSMC의 3분기 실적 발표 설명회에서도 이와 관련한 질문들이 나왔다.
TSMC는 당장 회사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회사는 이번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미국 정부의 새로운 규정으로 일부 제품을 중국으로 수출할 수 없게 됐다”며 “계속 평가를 수행하고 있지만, 아직은 TSMC에 대한 영향이 제한적이고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사는 AI 수요가 지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사 ASML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ASML은 미세 공정의 핵심 장비인 극자외선(EUV) 및 심자외선(DUV) 노광 장비의 글로벌 시장 독점 업체다. 중국은 2019년 네덜란드 정부의 EUV 수출 금지 정책으로 구형 버전인 DUV 장비를 구매해오다, 올 9월부터는 DUV 마저 수출 규제 항목에 포함되면서 고립을 겪고 있다.
ASML의 중국 매출 비중은 지난 1분기 8% 수준에서 2분기 24%, 이번 3분기에는 46%까지 늘어났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수출통제 수위가 강화될 것을 예측하고, 사전에 확보할 수 있는 장비들을 미리 구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ASML은 이번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미국 정부의 최근 수출통제는 첨단 반도체 제조와 관련된 중국의 일부 팹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당사 매출의 지역별 점유율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관련 제품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생산 중이지만, 당장 이번 미국의 수출통제 강화 조치로 받을 직접적인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중국 시장 외에도 이미 AI 반도체 주문량이 넘치기 때문이다.
양사는 최근 미국 정부로부터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돼 미국 반도체 장비의 중국 공장 반입 제재와 관련해 무기한 유예받은 상황이다. 다만,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 강도가 심화함에 따라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전체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공장에서 전체 D램의 40%와 낸드 20%를 각각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 상반기 기준 중국 매출 비중은 17조 8080억원, SK하이닉스는 3조 8820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41.5%, 51.6%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