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회장, 배임 등 혐의로 징역 3년 집유 5년 확정판결
법률, 집행유예 ‘종료된 날’로부터 2년 취업제한 규정
집행유예 ‘기간 중’ 취업제한 효력 놓고 1·2심 엇갈려
시민단체 “집유 기간 취업은 모순···죄 무거울수록 취업제한 기능 상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 사진=금호석유화학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 사진=금호석유화학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배임 등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취업제한 불승인 처분에 반발해 법무부를 상대로 진행 중인 행정소송이 대법원에서 결론지어질 전망이다.

취업제한 발효 시점을 놓고 하급심 판단이 엇갈렸는데, 대법원이 관련 법률조항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내놓을 것으로 주목된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달 31일 박 회장에 대한 법무부의 취업승인 거부가 위법이라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앞서 서울고법 행정3부(재판장 함상훈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박 회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취업승인) 거부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뒤집고 박 회장 측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 처분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회장은 지난 2018년 11월29일 대법원에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등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확정 받았다.

그는 아들인 박준경씨를 위해 2008년 11월부터 2011년 1월까지 23차례에 걸쳐 금호석유화학의 비상장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의 법인자금 107억5000만원을 준경씨에게 담보 없이 낮은 이율로 빌려주도록 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개인 주식 자금 마련을 위해 회사 명의로 31억9000만원의 어음을 발행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박 회장은 집행유예 기간인 2019년 3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법무부가 ‘취업 불승인’ 처분을 내리자 2020년 6월 이번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의 쟁점은 특경가법 14조 1항의 취업제한 기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였다. 이 조항은 5억원 이상의 횡령·배임 등을 저지른 사람에게 취업을 제한하면서 그 기간을 ‘징역형의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된 날부터 2년’으로 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박 회장이 형을 확정 받은 2018년 11월부터 취업 제한이 시작된다고 해석했다. 집행유예 기간에도 취업제한 효력이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반면 박 회장은 집행유예 기간은 취업이 제한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1심은 법무부의 해석이 옳다고 봤지만, 항소심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취업승인에 대한 불승인 처분은 침익적 행정처분이다. 당사자에게 굉장히 불리한 조항을 해석할 땐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며 “집행유예 기간이 취업제한 기간에 포함된다고 해석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박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 집유 기간 길수록 취업제한 피하는 모순···“입법취지 몰각” 시민단체 비판

법률조항 해석을 놓고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집행유예 기간에 취업을 허용할 경우 여러 모순이 발생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집행유예 중에는 취업이 가능한 반면, 오히려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된 후에 비로소 취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집행유예 역시 형사처벌의 일환으로 범죄 이후 가까운 시기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유사 범죄를 억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며 “집행유예 기간에 오히려 취업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제재나 재범 억제의 기능이 무색해진다”고 밝혔다.

연대는 징역형이나 집행유예가 길수록 유죄판결 직후에는 오히려 더 오랫동안 취업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불균형이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3년의 징역형 또는 집행유예 처벌을 받은 경우, 3년간은 취업을 유지할 수 있는데, 더 무거운 처벌인 5년의 징역형 또는 집행유예를 받으면 5년 동안 취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연대는 “극단적인 예이나, 무기징역의 경우 취업제한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며 “집행유예 기간에도 범죄와 상관없이 대표이사로 재직할 수 있다고 본다면 취업제한의 취지와 실효성을 완전히 몰각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 지배주주만 유리한 법률조항 논란···“입법 필요” vs “해석 지나쳐”

취업제한 법률조항은 주요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하게 적용되는 등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일반 임직원이 횡령·배임의 범죄를 저지른 경우 그대로 회사에 재직하기 어렵지만, 주요 지배주주의 경우 이번 사례처럼 계속 경영진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박 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법률의 불명확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법률이 잘못되고 불명확하다면 국회가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지 법원이 물리적인 해석 범위를 넘어설 수는 없다”면서 “법률이 잘못됐을 수도 있고, (법률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국민에게 불이익을 주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와 관련 연대는 “취업제한은 지배주주와 같이 회사의 자체적인 통제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대상에게만, 매우 한정적으로 규범력이 발생한다”며 “법률조항에 대해서까지 법원이 지나치게 법률 문언의 엄격함을 강조하는 것 역시 해석 권한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특경가법의 취업제한 해석 논란은 지난해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례(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6월 확정, 5년간 취업이 제한)로 주목받기도 했다. 당시 이 회장이 취업승인을 없이 경영활동을 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고발장이 접수되기도 했다. 법무부는 ‘미등기·무보수·비상근’이면 취업상태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지만, 이 부회장을 위해 법무부가 법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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