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집행력’ 법 취지 언급하면서도 ‘미등기 임원’ 강조
시민단체 “등기는 부차적 문제···실제 영향력·집행력 행사”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2일 오전 과천 법무부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2일 오전 과천 법무부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 취업제한을 어기고 경영활동을 하고 있다는 논란에 대해, 법무부가 법적 문제가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취업제한자의 범죄행위와 밀접한 기업에서 영향력과 집행력 행사를 막는다는 법률 취지를 인정하면서도, ‘미등기 임원’만을 강조하는 형식적 해석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무부는 20일 발표한 설명자료에서, 이 부회장의 사례가 취업제한 처분을 받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던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사례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2018년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확정 받은 뒤 집행유예 기간인 2019년 3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로 취임했다가 법무부로부터 취업제한 통지를 받았다. 박 회장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취업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2월 패소했다.

법무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취업제한의 목적은 대상자가 범죄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에서 영향력·집행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며 “이 경우 법이 제재하려는 대상은 주주총회 등을 거쳐 선임돼 기업에서 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등기 임원’이며, 회사로부터 명목상 직함을 받은 ‘미등기 임원’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패소) 판결 당시 박 회장은 금호석화의 대표이사 및 등기이사였다”며 “이 부회장의 경우 부회장 직함을 가지고 있으나 미등기 임원으로 박 회장의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의 설명대로라면 ‘미등기 임원’이라면 기업에 영향력과 집행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미등기 임원인 상태로도 경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13일 가석방 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을 찾아 경영 현안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사회단체는 법무부의 설명이 취업제한 규정의 입법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한다.

이지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이 부회장은 미등기 이사이면서도 여전히 최고운영책임자의 직을 유지하고 있고, 회사 경영상 중요한 회의를 주관하는 등의 업무를 보고 있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이 부회장을 해임하지도 못하고 있다”며 “이 부회장이 여전히 회사에 막강한 영향력과 집행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재벌총수 입장에서 상근 및 등기 여부는 회사에 대한 지배력이나 영향력과 비교할 때, 지극히 부차적인 문제다”며 “(법무부의 설명)은 중대한 경제범죄를 저지른 재벌총수들이 손쉽게 경영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돼 재수감돼 복역하다 광복절 가석방으로 지난 13일 출소했다. 법무부는 지난 2월 삼성전자에 취업제한을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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