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는 ‘3‧3‧3’ 법칙이 있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발을 든 뒤 공을 던지는 시간 1.33초, 공을 잡은 포수가 2루까지 던지는데 걸리는 시간 2.0초(총 3.33초)를 넘어선 안된다고 해서 붙여졌다. 최근 빠른 발을 이용한 야구가 대세가 되고 투수와 포수가 여기에 발맞춰 반응속도를 끌어올리면서 이 법칙은 깨졌다.

야구에 ‘3‧3‧3’법칙이 있다면 법정엔 ‘3‧5’법칙이 있다. 회삿돈 수천억원을 횡령하고 장부를 조작해 세금을 떼먹어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은 거뜬히 받아 낼 수 있다. 가끔 쇠파이프를 휘둘러 해결사 노릇을 해도 징역살이는 면할 수 있다. 이런 결과는 일반인은 감히 꿈도 못 꾸기에 금수저 ‘3‧5’법칙이란 표현이 좀 더 정확하다.

그런데 최근 ‘3‧5’법칙이 깨졌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던 탈옥범 지강헌이 통탄할 일이 생긴 것이다. 지난 15일 법원이 이재현 CJ그룹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이 이 회장에게 적용된 배임죄 혐의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고등법원에 사건을 돌려보냈지만 실형은 그대로 유지됐다.

지강헌의 외침을 무색하게 만든 이재현 회장의 가장 큰 죄목은 ‘조세포탈죄’다. 재판부는 “재벌 총수라도 법질서를 경시해 개인 이익을 위해 조세를 포탈하거나 재산범죄를 저지른 경우 엄중히 처벌받게 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세포탈에 대해선 한국보다 외국에서 훨씬 엄격하게 다룬다. 특히 미국의 경우 횡령‧회계 부정 등 화이트칼라 범죄의 양형은 상식을 뛰어 넘는다.

2005년 미국 법원은 회삿돈 6억달러를 횡령한 혐의로 전자‧의료기 글로벌 기업 타이코(주)의 대표 데니스 코즐로우스키에게 징역 25년과 벌금(fine) 7000만달러를 부과했다. 같은 해 미국 2위 장거리 전화회사 월드컴의 회장 버나드 에버스는 110억달러의 회계 부정 등 혐의로 징역 25년을 선고 받았다.

이재현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되자 일각에선 사법정의가 부활했다고 말한다. 이 회장이 포탈한 세금이 251억원이다. 수백억원을 포탈한 재벌총수가 감옥에서 2년 정도를 보냈다고 사법정의가 살아났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다음달 거의 같은 죄목으로 또 한 명의 재벌 총수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법의 심판대 앞에 선다. 혐의 금액은 이재현 회장의 비리 금액보다 훨씬 많은 8000억원대다. 재판부가 사법정의 차원에서 어떤 선고를 내릴 지 주목된다. 

유재철 기자 yjc@sisa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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