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예산 편성 우려 사라져…법안 바꿔먹기 新유행

국회는 2일 밤 11시10분부터 본회의를 연 뒤 자정을 넘긴 3일 0시48분 내년도 예산 수정안을 처리했다. 해마다 극한 대치를 이어가며 늑장을 부렸던 국회가 올해에도 막판 진통을 겪으며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48분 넘겨 처리하게 됐다. 

여야가 극심한 의견 대립에도 불구하고 예산안이 비교적 원만히 처리된 것은 국회선진화법 공이 컸다. 예산안 심사가 완료되지 않을 경우 정부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한 제도 덕분에 여야 모두 압박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도입 첫 해였던 지난해 혼란스러웠던 모습과 달리 세부적인 항목도 대부분 여야간 합의를 이뤄냈다.

법은 선진화했지만 이를 실천한 의원들은 성숙하지 못하다는 평가다. 여야는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절차는 지키면서도 밀실·졸속 심사 관행까지 바꾸지 못했다. 세부 사업별로 예산이 어떻게 늘고 줄었는지 속기록도 안남겼다. 막판에 예산안과 법안을 연계시키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법안을 빅딜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 국회선진화법에 뒤바뀐 운명…강경해진 與, 무기력해진 野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지도부는 2일 새벽까지 이어진 심야 협상 끝에 예산안 처리 방안에 합의했다. 관광진흥법과 대리점 거래 공정 화법 등 쟁점 법안 5개도 함께 처리하기로 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5대 입법에 대해서는 합의 를 이루지 못했지만 여야 모두 적잖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록 정부안이 자동부의되긴 했지만 전반적인 심사 과정은 지난해와 비교할 때 비교적 순탄했다. 세법 심사를 위한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논의도 예년보다 원만하게 진행됐다. 각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도 예년에 비해 1~2주 가량 빨리 진행됐다. 지난달 30일까지 "협상이 99% 완료됐고, 몇 가지 쟁점만 남았다"고 할 정도로 비교적 원만한 협상이 이어졌다. 여야 모두 국회선진화법의 자동부의 조항을 고려해 논의를 서두른 덕분이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여야의 역학관계도 변했다. 여당은 "새누리당의 의견만 반영한 수정 예산안을 처리하겠다"며 거세게 몰아붙였다. 지난 1일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나서 "예산안과 쟁점 법안을 연계하겠다"고 밝히면서 관광진흥법 등 해묵은 과제를 풀게 됐다.

반면 야당은 무기력했다. 예산안 처리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굵직한 요구사항을 반영했던 과거의 야당은 없었다. 누리과정 예산도 반영하지 못했고, 법인세 인상 카드는 꺼내들지도 못했다. 노동계에서 강하게 반발하는 노동관계 5법의 처리만 늦춘 것 이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여야의 뒤바뀐 운명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준예산 편성 등의 우려는 사라졌다는 평가다. 국회선진화법의 자동부의 제도의 강제성을 여야 모두 인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에는 새해 예산안이 해를 넘겨 처리됐다. 대선이 있었던 2012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준예산 편성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코 앞에 두고 겨우 막은 셈이었다. 

◆ 밀실 심사 관행은 여전…'졸속·짬짜미' 심사도 논란

국회선진화법은 밀실·졸속 심사 관행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양당은 올해도 속기록도 남지 않는 소(小)소위에서 수천 억원의 예산을 늘리고 붙였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부터 예산안 증액을 담당한 소소위를 가동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것은 물론 소소위에 참여하는 의원도 극히 소수였다. 매년 반복됐던 풍경이다. 그럴때마다 밀실심사, 대표성의 문제를 지적받았지만 여야는 올해도 이런 악습을 고치지 못했다. 

졸속 심사도 되풀이 됐다. 예결위는 박명재 새누리당·최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두 명으로 감액·보류 소소위를 가동해 1조원이 넘는 예산을 삭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감액 내역은 아직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예산안이 다 통과되고 나서야 그 내역을 알 수 있는 시스템이다.

막판 법안 바꿔먹기라는 신(新) 풍경도 연출했다. 정부안 자동부의 조항을 빌미로 예산안과 법안을 연계시키자 여야 협상을 통해 반(半)강제적인 빅딜이 이뤄진 셈이다. 특히 일부 법안은 상임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전에 처리하기로 합의됐다. 이 때문에 각 상임위원으로부터 '월권'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실제로 상임위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상 여당 주장 법안),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사회적경제기본법(이상 야당 주장 법안) 등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묶음 처리'하기로 합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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