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쌍용·현대, 급등한 공사비 증액 요청
발주처 KT ‘물가변동 배제 특약’ 이유로 인상 거부
건설분쟁조정위 조정 강제성 없어…법적공방 가능성도

롯데건설·쌍용건설·현대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이 통신 대기업인 KT와 공사비 증액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 그래픽=시사저널e
롯데건설·쌍용건설·현대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이 통신 대기업인 KT와 공사비 증액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 그래픽=시사저널e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대형 건설사들이 통신 대기업인 KT와 공사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공사비에 반영해 달라는 건설사들의 요구를 KT가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공사비 증액분만 1600억원에 달한다. KT가 계약 후 물가가 올라도 공사비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을 근거로 증액 거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진통이 지속될 전망이다.

◇롯데건설, 추가 공사비 1000억원 못 받아…쌍용건설, KT 판교 신사옥서 시위 벌이기도

27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서울 광진구 ‘자양1재정비촉진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발주처인 KT와 갈등을 빚고 있다. KT가 공사비 증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다. 롯데건설이 요구한 증액분 규모는 1000억원에 달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급등으로 공사비 증액이 불가피하다는 게 롯데건설 입장이다.

자양1구역 재개발은 옛 KT 전화국 부지 50만5178㎡에 광진구청 청사와 구의회, 보건소, 호텔, 공동주택 등을 짓는 사업이다. 사업비만 1조원이 넘은 초대형 프로젝트다. 지난해 청약 경쟁률 98대 1을 기록한 ‘구의역 롯데캐슬 이스트폴’(1063가구)도 포함돼 있다.

쌍용건설·현대건설·한신공영 등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쌍용건설은 지난해 4월 완공한 KT 판교 신사옥 관련 공사비 초과분을 놓고 KT와 분쟁 중이다. 2020년 계약 체결 당시보다 원가가 크게 오른 만큼 공사비를 171억원 증액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쌍용건설은 지난해 10월 신사옥 현장에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항의 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유명 건설사가 대기업 발주처를 상대로 장외시위에 나선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달 12일에도 광화문 사옥 앞에서 2차 시위를 벌일 계획이었지만 KT 측이 협상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해 시위는 연기된 상태다. 일부 하도급 업체는 비용 부담으로 공사를 중간에 포기했다.

쌍용건설과 하도급사가 판교 KT 신사옥 앞에서 공사비 갈등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쌍용건설 
쌍용건설과 하도급사가 판교 KT 신사옥 앞에서 공사비 갈등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쌍용건설 

이 밖에 한신공영은 ‘부산 초량 오피스텔 개발사업’과 관련해 140억원 증액을, 현대건설은 ‘광화문 KT 사옥 리모델링 공사’ 관련 300억원을 추가 요구했지만 KT는 모두 거부했다.

◇KT “물가 변동 배제 특약, 법적 문제없어”…건설사 “전쟁·코로나 등 불가항력 상황 고려해야”

KT가 공사비 증액 요청을 거부하는 배경엔 계약 당시 작성한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이 있다. 해당 특약은 계약 후 입찰 당시보다 물가가 올라도 공사비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발주처 입장에서 시공사의 공사비 증액 요구에 난색을 표하는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불가항력적으로 공사비가 오른 상황에선 다시 협의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고 원자재값 폭등, 레미콘·화물연대 노조파업 등 전례 없는 사태가 잇달아 벌어졌다”며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공사비 상승인 만큼 발주처에서도 증액 요구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쌍용건설·한신공영·현대건설은 현재 국토교통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한 상태다. 롯데건설도 국토부의 민관합동 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정위에 중재를 신청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조정위에서 조정안을 권고한다고 하더라도 법적 효력이 없기에 갈등 상황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발주처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KT 측이 수용하지 않으면 소송 등 다른 절차를 강구해야 한다.

업계에선 정부가 민간 공사 중재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공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공사비 증액 조정에 나서야 공사 중단이나 지연 등 파국을 막을 수 있다”며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식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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