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 직회부
피해자 직접 지원으로 바뀌어
필요 예산 ‘수조원 vs 3700억원’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행사할 수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총선을 앞두고 전세사기 피해 보증금을 세금으로 먼저 돌려주는 방안이 다시 부상했지만 실제 추진 과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피해자 범위와 수조원의 재원 마련 방안, 다른 사기사건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등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아서다. 야당이 다수를 앞세워 본회의 처리를 강행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로 맞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따르면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이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29명 위원 중 야당의원 18명(더불어민주당 17명·녹색정의당 1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은 전세사기특별법 처리에 반대하며 표결 직전 퇴장했다. 부의란 본회의에서 안건을 심의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행위를 뜻한다. 여·야가 본회의에서 합의에 실패할 경우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30일 뒤 본회의에서 무기명 표결 절차에 돌입한다.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선(先)구제 후(後)회수’를 해주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앞서 국회는 지난해 전세사기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사기당한 집의 경·공매를 유예받거나 그 집을 우선매수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피해자가 원래 살던 전셋집에 계속 살고 싶어하는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신 그 집을 사 피해자가 공공임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피해자가 은행 보증금 대출을 계속 갚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저금리로 대출을 바꿔 타는 지원책도 내놨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기존 전세사기특별법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선구제 후회수’ 방식을 요구해 왔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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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방식이 간접 지원에서 직접 지원으로 바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해 피해 임차인을 우선 구제해주고 나중에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비용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선구제 기준은 소액 임차인 보호를 위한 최우선 변제금 수준으로 보증금의 30%정도다.

아울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피해주택의 은행으로부터 선순위 근저당 채권을 의무적으로 매입해 후순위 채권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도록 했다. 또 전세사기 피해자 요건 중 임차보증금 한도를 현행 3억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피해자로 인정될 수 있는 임차인에 외국인도 포함했다.

정부와 여당은 반발하고 있다. 악성 임대인의 채무를 세금으로 대신 갚는 것과 다름없어 다른 사기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보증금을 지급할 예산 마련도 문제다. 올해 예산안이 이미 지난해 12월 확정됐다. 국토부에선 수조원 규모의 국민 혈세가 투입될 뿐 아니라 그 상당액을 회수하지 못할 것으로 봤다. 국민의힘에서도 정부가 보금자리론 확대, 저리대출 소득요건 완화(7000만원→1억3000만원) 등을 약속한 상태에서 더 이상의 지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피해자들은 국토부의 주장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반박했다. 선구제 후회수 조항이 시행되더라도 관련 필요 예산을 최대 약 3700억원 규모로 예상했다.

업계에선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이 야권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쟁점이 된 선구제 후회수 방식은 여야 간 이견이 극명한 사안이다”며 “지원 대상과 예산, 형평성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아 합의점을 찾기 어려워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야당이 단독적으로 밀어붙인 만큼 윤 대통령도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맞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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