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29일까지 복귀하면 책임 묻지 않겠다”···박민수 “면허정지와 사법절차 불가피”
의협 비대위 “정부가 협박한다” 비판···전공의 대상 법률지원단 지원 밝혀
대전서 80대 심정지 환자 사망 발생···의대 교수들은 중재 노력, 시민단체도 복귀 요청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전공의들이 진료를 거부하는 의료대란이 다음 주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예고된다. 정부가 오는 29일 시점을 통보하며 복귀를 호소했고 다음 달부터 의사면허정지 등 원칙대응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의료계는 정부가 협박한다며 변호사를 대동해 전공의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이다.  

26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시작된 의료대란이 확산 일로를 걷고 있다. 실제 복지부가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전날 저녁 7시 기준 소속 전공의의 80.5%인 1만 34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다. 근무지 이탈자는 72.3%인 9006명이다. 여기에 다음 달 초 인턴 임용 예정인 의대 졸업생들이 수련계약서 서명을 거부하는 상태로 파악됐다. 일부 전임의도 병원을 떠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의료시스템이 파국 상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26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 전공의 복귀 시한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6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 전공의 복귀 시한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특히 이날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전공의들에게 “29일까지 여러분들이 떠났던 병원으로 돌아온다면 지나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힘에 따라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정부 발표와 관련, 기존 입장에서 일보 후퇴했다는 분석과 의료계에 최후통첩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익명을 요청한 의료계 관계자 A씨는 “지나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강조했던 원칙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반면 관가 관계자 B씨는 “3월 이후에는 정부가 언제든지 진료 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를 행정처분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재로선 정부의 최후통첩 가능성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이날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도 “3월부터는 미복귀자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최소 3개월 면허정지 처분과 사법절차 진행이 불가피하다”며 “면허정지는 그 사유가 기록돼 해외취업 등 향후 진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달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29일 시점을 통보하고 다음 달부터 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를 상대로 행정처분을 강조한 것은 원칙에 입각한 정책을 수행하고 의료계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강경 대응이 아니라 원칙 대응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이번 전공의 파업 사태에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신중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던 복지부가 다음 달로 시점을 제시한 것은 전공의 파업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을 경우 환자 사망 등 최악의 사태 발생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실제 지난 23일 낮 의식 장애를 겪던 80대 환자 C씨가 심정지 상태로 구급차에 실려 갔지만 응급실을 찾지 못하다가 53분 만에 대전 한 종합병원에 도착한 후 사망 판정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C씨 사망 원인이 전공의 파업 여파인지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지만 복수의 사유로 병원 7곳에서 수용 불가를 통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사태 심각성을 짐작케 하고 있다. 

26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전공의를 대신해 교수와 간호사가 응급환자를 문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6일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전공의를 대신해 교수와 간호사가 응급환자를 문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 발표에 대해 의료계는 강력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중대본 브리핑에 대응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회견에서 주수호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정부가 3월부터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 3개월 면허정지와 사법절차가 불가피하다며 해외 취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을 수 없는 수준의 협박’을 했다”고 지적했다. 주 위원장은 “면허정지와 사법절차는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다리를 파괴하는 행동”이라며 “전공의들이 다치면 의사들 분노는 극에 달해 의료 현장 혼란은 불가피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29일까지 복귀하면 죄를 사해준다’고 했는데 전공의들은 정부가 너무 만만하게 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라며 “그런 식으로 대응해 의사들이 물러설 것 같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주 위원장은 “전공의에 대한 의협 법률지원단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며 “각 시도 의사회와 개별병원 차원에서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치 중”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정부와 의료계의 정면 대립에 대해 의료계 일각이 중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전공의들과 회동을 갖고 사태 해결책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날 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서울대 비대위는 “전공의들을 (의료 현장으로)돌리기 위한 대책은 협박이나 강제가 아니라 설득에 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세대와 순천향대 등 다른 의대 교수들도 성명을 내고 정부와 대화를 촉구했다. 단, 현재 정부와 대화 창구는 의협 비대위가 총괄하는 상황에서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가 어느 정도 목소리를 높일지 회의적 시각도 있다. 의대 교수 신분상 ‘전공의 보호’에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에서 중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시민단체들도 전공의들의 진료 현장 복귀를 요청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위급 환자들이 제때 수술이나 응급 처치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며 “더는 국민이 실망하게 하지 말고 존경 받는 ‘의사 선생님’ 자리로 조속히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날짜를 정해 사직서를 내고 환자를 버려두고 의료 현장을 떠난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가 아닌 명백한 집단 진료 거부”라며 “국민과 맞서지 말고 환자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환자단체 관계자 D씨는 “남아있는 의료진 체력과 환자들 상황 등을 감안하면 다음 주부터는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이 어떻게 변화할지 전망이 어렵다”며 “의협 비대위도 인정했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전공의들은 일단 현장에 돌아와 사람부터 살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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