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등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20일부터 진료 중단···병원은 수술과 입원 일정 등 조정
복지부, 221개 병원 전공의 대상 진료유지명령···한덕수 “비상진료 가동, 비대면진료 허용”
환자단체 “수술 연기로 환자들 직접 피해 예상”···경실련, 전공의 고발 검토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규모가 큰 빅5 병원을 중심으로 전공의들이 사직서 제출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정부도 진료유지명령으로 맞대응하는 상황에서 수술 일정이 일부 연기되며 환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를 중심으로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들이 제출한 사직서가 접수되고 있다. 병원측은 정확한 전공의 사직서 제출 현황은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교육수련부에 확인해도 사직서 제출 숫자를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의 경우 다른 세브란스나 빅5 병원에 비해 하루 빠른 이날 전공의들이 진료를 중단한 상태로 알려졌다.

16일 서울의 한 병원 전공의 전용공간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6일 서울의 한 병원 전공의 전용공간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같은 사태는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김모 의국장이 최근 동료들에게 사직 의사를 밝힌 글의 여파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가을 소청과 전공의 수료를 앞둔 4년차 전공의인 김모 의국장은 최근 2년 연속 소청과 레지던트 지원자가 없는 등 전공의 인력난에 시달리는 세브란스 현실과 현재 임산부이면서도 컵라면도 제때 못 먹는 강행군에 지쳤음을 토로한 바 있다. 의료계 관계자 A씨는 “선배 전공의들이 사직하며 그동안 고충을 토로한 글이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날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일부 전공의 진료가 중단되자 보건복지부는 병원에 현장점검을 나간 것으로 파악된다. 신촌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점검 내용 등) 구체적 사안을 파악하고 있다”며 “진료 중단을 예상하고 오늘 병원 수술을 기존 200여건에서 절반 정도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세브란스병원 외에도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은 20일 아침부터 전공의들이 근무를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다른 수련병원 전공의들도 이날까지 사직서 제출을 완료한 후 20일부터 이같은 흐름에 동참할 예정으로 파악된다. 실제 대전을지대병원 전공의들은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한 상황으로 파악된다. 대전선병원 전공의 21명 중 16명도 이날 사직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병원들도 대책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규모가 큰 수술 연기를 환자들에게 공지했다.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수술과 환자 입원 일정 조정의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처럼 사실상 20일부터 의료대란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도 강경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는 19일 회의를 갖고 의료공백을 방지하기 위한 ‘집단행동 대비 비상진료대책’을 논의했다. / 사진=보건복지부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는 19일 회의를 갖고 의료공백을 방지하기 위한 ‘집단행동 대비 비상진료대책’을 논의했다. / 사진=보건복지부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의사 집단행동 대응 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집단행동 시 정부는 공공의료기관의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하고 집단행동 기간 비대면진료를 전면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총리는 “중증 응급환자들이 위협 받는 상황을 초래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의사들 집단행동으로 혹시라도 환자들이 수술 받지 못하거나 생명을 잃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대면진료와 관련, 한 총리는 “만성·경증환자들이 의료기관 이용에 어려움이 없도록 집단행동 기간 전면 허용할 계획”이라며 “관계부처는 병원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정보를 국민에게 알기 쉽게 안내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도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후 브리핑을 통해 “전국 221개 전체 수련병원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한다”며 “오늘 현장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며 현황이 파악되면 신속하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진료유지명령과 관련, 박 차관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진료를 유지해 달라는 명령”이라며 “진료유지명령은 의료인 개인에 대해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업무개시명령이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에게 진료 복귀를 명령한 것이라면 상대적으로 진료유지명령은 더 강력한 의미의 명령으로 풀이된다. 

의료계와 정부가 이처럼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싸고 강대강 대응을 하고 있어 20일 이후에는 당초 예정됐던 대형병원 수술이 절반 이하로 축소되고 외래 환자에도 일부 영향이 예상되는 등 현실적으로 의료대란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건의료정책 핵심이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환자들은 배제된 채 의료계와 정부가 평행선을 달림에 따라 당장 수술 연기로 인한 환자들 직접 피해가 우려된다. 

익명을 요청한 보건의료단체 관계자 B씨는 “처음 의대 정원 확대가 이슈로 부상한 것은 맞지만 점차 진행되면서 의료계와 정부 양측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당장 수술 연기로 환자들 생명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김성주 암환자권익협의회장은 “현재 의료계와 정부 양측이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수 개월 기다렸던 수술이 한 번 연기되면 환자와 가족, 의사, 간호사 모두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성주 회장은 “의료계와 정부 대책을 보면 실질적으로 환자에 도움이 되는 방안이 없다”며 “양측은 강대강 대립보다는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쓴 소리를 했다.      

의대 정원 확대를 국민들 대다수가 찬성하는 상황에서 시민단체와 노동계 등은 전공의 집단행동에 대해 고발 방침을 밝히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집단 진료 중단 행위를 ‘담합’으로 판단하고 진료를 거부하는 전공의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의약분업 당시에도 집단 진료 거부를 담합으로 판결한 사례가 있다”라며 “현재 고발 여부와 내용 등을 검토하는 단계이며 20일 이후 상황을 보겠다”고 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전공의 집단행동을 규탄하기 위한 범국민행동인 ‘국민 촛불행동’ 등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현재로선 이날 저녁이나 20일 오전 획기적 조치가 발표되지 않는 한 전공의 진료 중단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수술 연기 등으로 인한 환자들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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