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업황 부진에 현금 보유량 늘리기 ‘총력’
70兆 넘는 현금, HBM 등 신성장동력에 적극 투자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재계가 경기침체 우려 장기화와 고금리 등으로 이자부담이 크게 늘어나자 보유자산 매각이나 투자 및 몸집 줄이기로 현금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대내외적 위기 요인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변동성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늘리기에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현금성 자산은 큰 거래비용 없이 현금으로 전환이 용이해 재무 리스크 대처에 용이하다. 가치 변동의 위험이 있는 주식은 포함되지 않는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과 SK, 현대차, LG, 포스코 등 주요 기업집단 핵심 계열사들의 지난해 3분기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81조9388억원이다. 2022년 3분기(126조3548억원) 대비 43.9%(약 55조원) 증가했다. 각 기업집단에서 선정한 핵심 계열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 LG전자, 포스코홀딩스 등이다.

김정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보유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기업의 체력 바로미터”라며 “우크라이나 및 이스라엘의 분쟁, 글로벌 고물가 기조 등이 계속되면서 기업의 현금 창출 및 보유 여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다”고 전했다. 

1년간 현금 보유량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삼성전자다. 3분기 기준 2022년 44조5154억원에서 2023년 75조1442억원으로 68.8% 늘었다. ‘캐시카우’인 반도체 업황의 부진으로 대규모 설비 투자를 줄이고 해외 사업장의 유보금을 국내에 들여오는 등의 움직임으로 보유 현금을 크게 증가시켰다.

곳간에 쌓인 삼성전자의 현금은 올해부터 시장에 풀릴 전망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분위기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신규 인수합병이나 그동안 줄여왔던 설비 투자에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기반 프로세싱인메모리(PIM) 'HBM-PIM'. / 사진=삼성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기반 프로세싱인메모리(PIM) 'HBM-PIM'. / 사진=삼성

특히 반도체 시장의 새 먹거리로 떠오른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주요 자금 투자처가 될 전망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용량을 늘리고 처리 속도를 높인 반도체다.

인공지능(AI) 기술의 진보로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많아지면서 HBM 수요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HBM 시장 규모는 올해 39억 달러(약 5조2000억원)에서 2027년 89억 달러(약 13조2000억원)로 2배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HBM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려 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다. 아울러 글로벌 HBM 시장점유율 50%로 1위를 달리고 있는 SK하이닉스의 지위를 차지하겠다는 목표다. 삼성전자의 HBM 점유율은 40% 수준이다.

삼성전자처럼 반도체 업황 부진을 겪은 SK하이닉스도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크게 늘린 상황이다. 3분기 기준 2022년 47조1921억원에서 지난해 71조2230억원으로 50.9%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거센 HBM 추격을 뿌리치면서, 현재 주도권을 굳건히 하기 위해 관련 설비 투자 증설에 집중할 계획이다.

같은 기간 현대차와 LG전자는 각각 3.7%, 7.2% 현금 보유량이 늘었다.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보다 증가 폭이 낮은 것은 상대적으로 제품 판매량 증가 등으로 실적유지 및 상승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익을 곧바로 투자 자금으로 활용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 / 사진=현대차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 / 사진=현대차

현대차의 경우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지난해 역대 최대실적을 달성했다. 증권가에 따르면 현대차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5조4374억원, 기아는 12조237억원이다. 두 곳 모두 2010년 새 회계기준(IFRS) 도입 후 최대 실적이다.

LG전자는 지난해 매출 84조2804억원을 달성해 역대 최다 매출을 기록했다. B2B 사업의 고성장 등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소비심리 약화에도 높은 실적을 달성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안정적인 실적을 기록할 정도로 판매량이 성장세를 보일 때는 굳이 현금을 끌어모을 이유가 없다”며 “수익을 고스란히 투자 자금으로 활용해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포스코홀딩스는 1년새 보유 현금이 4.6% 감소했다. 기존 철강기업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철강 시황 악화에도 투자를 늘린 결과 현금성 자산이 줄어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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