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감소율은 가장 빨라
높은 경쟁압력과 고용·주거·양육 불안 영향
“출산율 0.2명 높이면 잠재성장률 2040년대 0.1% 포인트 개선”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가 텅 비어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가 텅 비어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유례없는 초저출산 상황에서 적절한 청년 정책 등이 나오지 않을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050년대에 0% 이하로 추락하고 2070년엔 인구가 4000만명을 밑돌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저출산의 핵심 원인으로 청년층이 느끼는 경쟁압력과 고용·주거·양육 불안이 지목됐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3일 발표한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영향·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1명당 15∼49세 사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81명이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고 217개 국가·지역 가운데 홍콩(0.77 명)을 빼고 꼴찌였다. 올 3분기에는 역대 최저치인 0.7명을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당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한다. 인구 대체 수준은 2.1명, OECD 회원국 평균은 1.58명이다.

출산율 하락은 가장 빨랐다. 1960~2021년 합계출산율 감소율은 86.4%(5.95명→0.81명)다. 217개 국가·지역을 통틀어 1위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20.3%)로 집입하고 2046년엔 OECD 회원국 중 일본을 제치고 고령인구 비중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된다. 2070년엔 국내 인구가 4000만명 이하로 줄고 인구 감소율도 연 1% 이상을 기록할 가능성이 90%로 나타났다.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효과적인 정책 대응이 없다면 한국의 추세성장률이 2050년대에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은 68%로 나타났다. 추세성장률이 0% 이하를 나타낼 가능성은 2050년 50.4%에서 2059년 79.0%로 점증하고, 2060년 이후 80%가 넘는다.

저출산의 핵심 원인으로 청년층이 느끼는 경쟁압력이 지목된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9월 전국 25-3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경쟁압력 체감도가 높은 그룹의 평균 희망자녀 수는 0.73명으로 경쟁압력 체감도가 낮은 그룹의 평균 희망자녀 수(0.87명)보다 0.14명 적었다.

고용·주거·양육 불안 등도 저출산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15∼29세 고용률은 2022년 기준 46.6%로 OECD 평균(54.6%)보다 현저하게 낮다. 대학 졸업 나이와 결혼 연령대를 고려해 25∼39세 고용률을 비교해도 한국(75.3%)은 OECD 평균(87.4%)을 12.1% 포인트 밑돈다.

또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가 46개국 MZ세대(1983∼2003년생) 2만3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생활비를 1위로 꼽은 비율은 한국(45%)이 다른 국가(32%)보다 높았다. ‘재정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응답률은 한국(31%)이 나머지 국가(42%)보다 낮았다.

개인의 고용 상태(취업·정규직 여부)에 따라서도 결혼의향이 크게 차이가 났다. 15∼29세 임금금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2003년 31.8%에서 2022년 41.4%로 9.6% 뛰었다. 취업자의 결혼의향 비율(49.4%)은 비취업자(38.4%)를 웃돌았지만, 비정규직(36.6%)의 경우 오히려 비취업자보다도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중요한 저출산 대책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질 측면의 일자리 양극화) 완화 ▲주택가격과 가계부채 하향 안정 ▲수도권 집중 완화 ▲교육과정 경쟁압력 완화 등의 ‘구조 정책’ 등을 꼽았다. 지표상으론 도시인구집중도, 청년(15-39세) 고용률, 혼외출산비중, 육아휴직 실이용기간, 가족 관련 정부 지출, 실질 주택가격지수 등 6개 지표를 모두 OECD 평균 수준으로 올리면 합계출산율을 최대 0.845명까지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출산율을 0.2명 높이면 잠재성장률은 2040년대에 0.1% 포인트 개선된다.

황인도 한은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호주는 정부 정책으로 합계출산율이 2001년 1.74명에서 2008년 2.02명까지 높아졌으나 과도한 재정지출 논란이 발생한 후 다시 2022년 1.70명으로 떨어졌다”며 “출산율을 안정적으로 높여가려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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