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까지 ‘정치댓글판’ 만드는 정치인 현수막···국회서 법 바꿔 자영업자들과 달리 옥외광고물법 적용 예외 특권
정치혐오 키우고 안전문제 우려된다는 비판도···당비만 나가고 효과도 미지수
“후진국형 정치···현수막 덜 내건 정당 지지하는 운동이라도 해야 없어져”

한 전봇대에 여러 개 정당 현수막들이 덕지덕지 매달려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 전봇대에 여러 개 정당 현수막들이 덕지덕지 매달려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대법원장 임명 부결, 이재명 방탄의 마지막 퍼즐’(국민의힘)

‘(한동훈 사진과 함께)휘발 영수증 아이폰 비번 이것이 잡범이다’(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 혹은 동네를 다니다 보면 언제부턴가 위와 같은 정치인들의 현수막이 많이 보입니다. 대부분 서로 욕하거나 자신들이 무언가를 잘했다는 내용입니다. 정치인들 싸우는 것 보기 싫어 TV나 뉴스도 잘 안 본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제 동네에서 돌아다니면서도 억지로 여야가 싸우는 것을 봐야하는 판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또 태풍 등 바람이 불면 안전사고까지 일으킬 수 있고요.

일단 모든 걸 떠나 ‘해당 행위 자체가 불법으로 알고 있는데 왜 철거를 하지 않느냐’는 분들이 많습니다. 너도나도 옥외광고물을 설치하면 도시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지정된 게시공간 외엔 현수막을 다는 것이 불법인데요. 상당수 나라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정당이나 정치인들 현수막은 왜 여기저기 있는지, 힘이 있어서 철거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시각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유를 보면 더 황당합니다. 정치인들 현수막은 일반 자영업자 등과 달리 법적용을 피해갑니다. 2022년 6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정당 현수막'은 법적용 예외가 됐습니다. 사실상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치외법권을 만든 겁니다.

심지어 이런 와중에도 불법적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고 합니다. 행정안전부 정당 현수막 설치 관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정당 현수막’엔 정당명 외 특정인 이름을 표시할 수 있는 경우는 당 대표나 당원협의회장(지역위원장)만 가능한데, 이 마저도 잘 안 지켜진다고 합니다.

사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왜 정치인들의 현수막을 옥외광고물법 적용 예외로 했느냐’인 것 같습니다. 결국엔 다 서로 비방하고 자기 자랑하는 공해에 가까운 내용인데요. 어차피 누구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취하는 세상에 ‘국민의 알 권리’ 때문일리는 없고 결국 본인들의 ‘알릴 권리’만 챙기겠다는 심산 아닐까요.

심지어 해당 현수막을 보면 오히려 현수막을 건 정당이나 인물에 대한 혐오만 커진다는 시민이 대다수입니다. 한 직장인은 “일단 상대 욕하거나 지 자랑하는 현수막을 보고 자신들을 뽑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람을 원숭이 취급하는 것이어서 기분이 나쁘다”며 “퇴근길에 보이는 계속 상대방 비방하는 현수막 하나 있는데 그 현수막 주인 낙선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꼭 투표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일부 정치권에서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자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해당 행위가 당비만 나가고 여야 모두에게 괜한 ‘치킨게임’만 되는 모양새이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이곳저곳 덕지덕지 정치인들 현수막이 붙어 있습니다. 국민들이나 정치인들이나 모두에게 득 될 것 없는 현수막 정치를 사라지게 하려면 결국 해당 행위가 실제로 득이 안되는 것을 넘어 손해라는 인식을 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무분별하게 현수막을 내거는 행위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정치”라며 “현수막을 덜 거는 정당에 표를 더 주는 시민운동 등을 관련 행위를 억제해야 할 판”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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