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발표’ 아닌 정책 효과에 기반한 신중한 행보 필요
집값 기준 대출 규제 등 여전히 남아 있어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윤석열 정부 출범은 전 정권과 무관하지 않다. 무관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뗄래야 뗄 수가 없다. 지난해 대선 직후 한국갤럽이 대선투표자 1002명 가운데 윤석열 당시 당선인에게 투표한 423명을 대상으로 윤 후보에게 투표한 가장 큰 이유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39%가 압도적으로 정권교체를 이유로 들었다. 정치성향이 일치해서라는 응답은 7%에 불과했다.

실제로 주변에도 태어나서 그때 보수당 처음 찍어봤다는 사람들 많이 봤다.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사실상 전 정권에 실망한 중도층들이 대안으로 표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틈만 나면 전 정권에서 해왔던 잘못된 부분들을 고쳐 나가겠다는 발언을 했던 것 같다. 또 복지 등과 관련해 포퓰리즘 식으로 하지 말라고 강조해 왔다. 윤석열 정부 사람들은 보여주기 식, 포퓰리즘 쇼가 아닌 실용적이고 전문가 집단 의견에 귀 기울이겠다는 태도를 자주 내비쳐왔다. 목소리 큰 특정 집단이 아닌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사는 중산층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늘 중요한 것은 말보다는 행동, 의지보다는 결과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윤 대통령의 의지표명과 무관하게 실제로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인 점들이 감지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물론 안보, 외교 정책 등과 관련해선 이전과 확연히 차이가 보이지만 일반 서민들 삶으로 들어가서 보면 상황이 좀 달라 보인다.

우선 문제해결 방식과 관련해 실질적, 과학적 접근인지 ‘깜짝 발표’인지 의심되는 모습들이 보인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김포 서울 통합’ 문제다. 김포와 서울을 오가는 것이 힘든 근본적 문제는 거리보다는 교통이다. ‘골드라인’은 이름값이 아깝게 ‘2량’으로 만들어졌고, 그렇다고 자차를 이용하기엔 도심이나 강남으로 나오는 대로가 한정적이라 길이 막힌다. 일자리가 서울에 몰려 있고, 골드라인이 2량으로 만들어진 것과 관련해 김포시민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 이건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줘야 할 문제임은 틀림없다.

문제는 그 지역통합과 문제해결과의 명확한 상관관계다. 중도층은 합리적 사람들이 많고, 합리적 사람들은 합리적 의심을 한다. 당연히 ‘김포가 서울이 되면 관련 문제가 어떻게 해결된다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 국토균형발전을 하겠다고 했던 것과도 ‘합리적으로’ 배치된다. 발표부터 하고 여기에 대한 답을 나중에 찾는 모습인데, 이는 과학적 접근보다는 보통 정치적 접근을 할 경우 나타나는 현상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순서인데, 어떤 답을 먼저 정해 놓고 이에 대한 이유를 나중에 만드는 방식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나오는 까닭이다.

서울과 김포를 합쳐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합치면 된다. 단, 순서가 틀렸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지게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왜 이게 해답이 될 수 있는지부터 제시해야 한다. 핵심은 ‘어떻게’다.

의대정원 확대 문제도 ‘어떻게’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하다. 결국 필수의료에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는 상황과 소아과 부족사태가 문제이고, 이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해야 할 지 논의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느닷없이 의대정원 확대부터 화두로 나왔고 중요하지도 않은 그 숫자를 놓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숫자를 늘려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1000명이든 1만명이든 늘리면 되는 것이지만, 그 숫자는 나중에 도출되는 것이지 먼저 숫자부터 정하는 것이 역시 순서가 틀렸다는 것이다.

사실 의대정원은 ‘얼마나 늘리냐’보다 ‘어떻게 늘리냐’가 중요한 상황이다. 병원을 운영하는 곳들은 중환자를 치료하고 수술할수록 수익성이 안 좋아지는 '의료수가' 문제 때문에 필수의료를 늘리는 것이 되레 손해인 구조다. 또 요즘 의대를 졸업한 이들은 전문의가 굳이 되지 않고 미용병원을 차려 큰 돈을 벌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수입도 더 많거니와, 잘못이 있든 없든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거액의 소송위험에 시달리는 소아과, 산부인과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의사를 ‘얼마나’가 아니라 어떤 분야에 ‘어떻게’ 늘리게 하는지가 중요한데 숫자발표부터 논하고 있다. 일각에선 의대졸업생을 늘려서 어쩔 수 없이 필수과로 가게 하면 된다는 소리를 하는데,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낙제’해서 오게 된 의사들이 국민 가족들을 수술하는 과를 맡게 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능력과 의지가 있는 의사들을 당근으로 가게 해야지, 생명을 다루는 과에 ‘어쩔 수 없는’ 의사들을 가게 하는 것은 국민적 재앙이다. 

대출규제와 관련해서도 이전 정권에서 지적 받았던 문제들의 잔상이 그대로 보이는 모습이다. 사려는 집의 가격에 따라 부동산 관련 대출을 제한하는 부분이 남아 있는 것 역시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몇몇 특례대출 기준을 보면 소득이 얼마 이상이면 안 해주고, 9억 이상 집을 살 때도 자격이 안 된다. 서울시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2억원인 시대다.

또 인터넷은행 신용대출 금리가 저신용자보다 고신용자에 높게 적용되는 경우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고신용자가 곧 고소득층이거나 재벌인 것도 아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애초에 대출을 안 한다.

물론 현 정부에서 크고 작은 변화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 무조건 전 정부와 다르게 해야 좋은 정부인 것도 아니다. 다만 전 정부에 대해 비판했던 부분에 대해선 적어도 스스로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상식적 의문이 제기 된다는 것이다. 총선을 5달 남긴 지금, 연말 술자리에 가면 다시 선거 이야기가 한창이다. 중도층들의 생각과 말이 많아지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