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선대회장 부인과 두 딸, 구광모 회장 상대 민사소송
첫 변론기일서 그룹 재무담당 하범종 사장 증인신문
“유언장 없지만 ‘장자승계’ 유지 담긴 메모에 서명받아”

구광모 LG회장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 사진=시사저널e 자료사진
구광모 LG회장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 사진=시사저널e 자료사진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이 2017년 뇌종양 수술을 앞두고 ‘개인재산은 아내와 두 딸에게, 경영재산은 장남에게 승계된다’는 취지의 메모에 동의 사인을 남겼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선대회장이 남긴 재산을 놓고 분할 소송 중인 세 모녀와 구광모 회장은 ‘유지가 담겼다는 메모’의 신빙성과 분할 합의 과정의 적정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1부(재판장 박태일 부장판사)는 5일 구본무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씨가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회복청구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열고, 하범종 LG 최고재무책임자 겸 경영지원부문장 사장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하 사장은 구 선대회장 사망 전후 상속세 신고 및 재산분할 관련 실무를 총괄한 인물이다. 2003년 LG화학 재무관리팀 직원으로 입사한 뒤 2013년부터 LG家 재산관리를 맡는 등 구 선대회장과 두터운 신뢰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하 사장은 망인의 유지가 담겼다는 메모에 대해 “구 선대회장은 2017년 4월 뇌종양 수술 하루를 앞두고 나를 불렀다. ‘회장은 구광모가 돼야 한다. 구광모의 지분이 부족하니 앞으로 가족의 결속력을 고려해서 구광모가 많은 지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유지를 담은 한 장 짜리 문서를 작성해 자필서명을 받았다”라고 증언했다.

하 사장은 ‘선대회장이 구두로 언급한 내용을 재차 확인하고자 문서를 작성했나’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1차 수술이 잘된 이후 해당 메모를 재차 선대회장에게 보여줬으나 변동할 내용은 없다라는 답변을 받았는가’라는 피고 측 대리인의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하 사장은 이 메모를 세 모녀와 구광모 회장에게 보여준 사실이 있으며, 재산분할과 상속조사가 마무린 된 2020년 초 폐기했다고 부연했다.

원고 측 대리인은 “세 모녀가 해당 메모를 본 사실이 없다고 한다”라며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했다. 또 회사 실무자가 메모를 자체적으로 폐기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어떻게 중요한 메모를 없앨 수 있느냐”고 캐물었다.

이에 하 사장은 “실제 메모 내용대로 분할이 이뤄지지도 않았고, 상속조사가 끝나면 관련 자료를 폐기하는 관행이 존재했다”라고 답했다. 또 협의 과정에서 충분한 동의가 있었다며 “당초 유지대로라면 모두 구 대표에게 주식 등 경영재산이 상속되어야 하지만 원고 측이 아쉬움을 표해 이를 수정했다”라고 밝혔다. 실제 구 회장은 경영권 확보를 위한 ㈜LG 지분 15%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 2.52%를 원고 측에게 양도했다.

반면 구 회장의 대리인은 해당 메모의 신빙성은 재판의 쟁점과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하며 협의 과정에서 유족 간 충분한 동의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영식 여사의 자필 사인이 담긴 동의서 두 장을 법정에 현출하기도 했다. 2018년 8월 작성된 한 동의서에는 ‘본인 김영식은 한남동 가족을 대표하여 LG주식 등 그룹 경영권 관련 재산을 구광모에게 상속하는 것에 동의함’이라고 적시돼 있었다.

구 회장의 대리인은 “원고들은 재무관리팀이 자신들을 속였다고 주장하나 소 제기 직전까지 재무관리팀에 개인재산 처분과 관련한 상의를 하기도 했다”라며 원고들의 이중적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피고 측 대리인이 사전에 제출하지 않은 서증을 바탕으로 증인신문을 진행함에 따라 원고 측에 추가 반대신문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재판부는 내달 16일 오후 2시30분 하 사장에 대한 두 번째 증인신문을 진행하고, 3시30분부터 두 번째 증인에 대한 신문을 진행하겠다고 정리했다.

2018년 5월 별세한 구 선대회장은 ㈜LG 주식 11.28%를 비롯해 총 2조원 규모의 유산을 남겼다. 가족들은 협의를 통해 2018년 11월 상속을 완료했다. 구 회장이 8.76%의 주식 지분을 물려받았고, 김 여사와 두 딸은 ㈜LG 주식 일부(구연경 2.01%, 구연수 0.51%)와 구 선대회장의 개인재산인 금융투자상품·부동산·미술품 등 5000억원 규모의 유산을 받았다.

세 모녀는 지난 2월28일 선대회장이 상속한 주식을 다시 분할해야 한다며 이 소송을 제기했다. 상속법에 따라 배우자 및 자녀들이 1.5:1:1:1 비율로 다시 재산을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구 회장의 ㈜LG 지분율은 15.95%이다. 세 모녀의 지분율은 김 여사가 4.02%, 구연경 대표 2.92%, 구연수씨가 0.72%이다. 법원이 세 모녀의 손을 들어줄 경우 구 회장의 지분율은 9.7%로 줄어들고, 세 모녀의 지분율 합은 14.09%로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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