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 후 미분양 9000가구 돌파···2년 3개월 만에 최대치
분양가 전매제한 완화 이후 수도권 쏠림 현상 심화···지방은 외면
옥석 가리기로 청약시장 양극화 뚜렷···분양시장 침체 지속될 듯
올해 들어 건설사 폐업 증가세···“금융권 등 연쇄 작용 우려···선제 관리해야”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지방에서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정부의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조치 이후 수요가 수도권으로 쏠리면서 지방은 여전히 미분양 해소에 어려움을 겪는 모양새다. 악성 미분양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건설사 줄도산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졌다.

4일 국토교통부 주택 통계를 살펴보면 올해 6월 말 기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9399가구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5.7% 증가한 것으로 2021년 4월(9440가구) 이후 2년 3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준이다. 준공 후 미분양은 공사가 끝난 뒤에도 분양되지 못해 악성 미분양으로 불린다. 악성 미분양은 올해 2월 8554가구에서 3월 8650가구, 4월 8716가구, 5월 8892가구 등 증가세를 나타내다 6월 9000가구를 돌파했다.

특히 악성 미분양은 지방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체 물량의 78.7%가 지방에 분포했다. 지방의 악성 미분양은 7407가구로 수도권(1992가구)보다 3배 이상 많았다. 부동산 시장에서 고금리 속 옥석 가리기가 뚜렷해진 가운데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 이후 서울과 수도권 인기 지역으로 수요가 몰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 그래픽=시사저널e

하반기 이후에도 수요가 입지와 교통이 좋은 수도권으로 쏠리면서 지방 분양시장의 침체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근 청약시장은 지역별로 양극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서울 평균 청약 경쟁률은 49.5대 1을 기록했다. 수백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단지도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에선 1순위에서 청약 마감에 성공하는 아파트가 전무한 실정이다. 경남 밀양에서 공급된 ‘수에르떼 밀양’은 45가구 모집에 단 한 명도 접수하지 않았다.

건설업계의 유동성 위기 우려도 커지는 분위기다. 통상 건설사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통해 공사 자금을 조달한다. 이후 분양대금을 받아 PF 자금을 갚거나 공사 대금을 납입한다.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증가할수록 자금줄이 막혀 자금 경색과 재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건설사들의 연대보증, 채무인수, 자금보충 등 PF 규모는 117조원(한국은행 집계)에 육박했다.

실제로 지방을 중심으로 건설사 폐업도 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상반기 종합건설기업 폐업 건수는 248건으로 집계됐다. 2011년 상반기의 310건 이래 최대치다. 지난해 종합건설업체 폐업 건수는 362건으로 한 달 평균 30건 수준이었으나 올 상반기는 41건으로 작년보다 월평균 10건씩 많은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초 분양 계약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준공 시점까지 공사비를 건설사가 납입해야 한다”며 “준공 후 미분양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부실화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하반기 PF 시장 경색이 시작된 이후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데다 분양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줄도산 우려가 현실화 되는 모양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지방 분양시장 침체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는 만큼 선제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건설사는 물론 금융권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며 “건설사의 재무적 부담이 금융기관에도 위험을 야기할 수 있으니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의 분양시장 침체가 유지된다면 앞으로 2~3년 뒤 준공 후 미분양이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다”며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민간과 공공 모두 기존 제도 내에서 자구노력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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